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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수필문학상 수상한 심장전문의 이방헌 교수
조회 2909 2016-02-17 12:41:19

가만히 보면 게는 ‘게’이게끔 태어났다. 단지 기는 재주뿐이어서 경사진 양은 냄비를 기어오르다가 미끄러지고, 오르다가 다시 또 미끄러지곤 한다. 그러면서도 아무런 투정이나 불만도 없고 애타 하는 기색도 내비치지 않는다. 물고기처럼 날쌔지도 못한 몸매가 억울하고 분하기도 하련만, 단단한 체념의 딱지로 덮어 누르고 제 길만을 가는 것이리라. (…중략…)

수필집 <게와 물고기>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필자는 게와 물고기를 잡아 양은 냄비에 두고 관찰을 하다가 그 속에서 날쌔고 영리한 물고기와, 느리고 융통성 없는 게를 관찰하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선 게를 집어 다시 물가에 놓아준다. 수필가 이방헌(의대·심장내과) 교수가 쓴 글이다. 그는 일상 대부분을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와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로 보내면서 틈틈이 수필까지 써 책도 발간하는 수필가다. 더욱이 이번에는 현대수필문학상에서 수상하는 영광까지 얻었다. 팔방미남(八方美男) 이 교수를 만났다.

환자와 문학만을 생각하며 사는 심장전문의

이 교수는 내과, 그 가운데 심장내과 전문의다. 매주 3차례 한 나절 이상 환자들을 진료하고, 지정된 시간만큼 의대생을 가르친다. 외부 직함도 많다. 대한고혈압학회 회장이면서 동시에 한국 만성질환 관리협회 이사도 맡고 있다. 그런 그가 이번에 수필가에서 주는 현대수필문학상을 받았다. 의사와 문학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개의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상까지 받게 된 것. 이 교수는 언제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됐고, 왜 글을 쓰는 것일까.

“초등학교 때부터 꾸준히 일기를 써 왔어요. 요새는 못쓰지만 학창 시절에는 일기 쓰는 게 습관이었죠. 대학 와서는 학보사에 글도 많이 투고하고, 의사가 된 후에도 의사신문에 기고도 꾸준히 했어요. 항상 글과 함께 지낸 셈이죠. 수필을 쓰는 건 타고난 기질 같아요. 한동안 바빠서 글을 못 쓰고 지냈는데 지난 2003년에 알고 지내는 수필가와 교류를 하다 수필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했다. 이 교수는 지난 2003년 진료와 수업 틈틈이 글을 쓰기 시작해 이듬해 수필집 <헌 구두>로 등단했다. 강의와 환자 진료로 바쁜 그는 대체 언제 글을 쓰고 책을 내는 것일까. 인터뷰 내내 틈틈이 시간 날 때 마다 글을 쓴다고 해명(?)하지만 왠지 부족해 보인다. 결국 그는 잠자리에 누웠다가도 좋은 내용이 떠오르면 메모를 하고, 환자와 대화를 하다가도 좋은 글감이 생각나면 진료 직후, 메모를 해둔다고 털어놨다. 일터, 침대, 화장실 등 모든 곳이 생각의 공간인 셈이다.

“환자를 보는 시간 외에는 글에 미쳐 살아요. 따로 글쓰기 위한 시간은 없어요. 말 그대로 틈틈이 생각하고 쓰는 거죠. 글 쓰는 게 생각보다 참 힘들어요. 의사인지라 글 한 편 쓰기 위해서 철학, 신학, 전문서적을 다 뒤져 봅니다. 여러 사전을 끼고 살아요. 솔직히 작가가 되는 게 어렵습니다. 사람들을 만나면 ‘나는 이제 의사가 아니다’고 말하지만 글 쓰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은 누구보다 스스로가 잘 압니다. 그래서 평소 항상 문학을 담고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고요.”

“고혈압, 심장질환 예방 위해선 생활요법 중요해”

‘문학을 담는다’는 말이 짙은 여운을 남긴다. 의사는 항상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대하는 직업이다. 이 교수는 평소 환자의 아픔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 애정과 사랑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수필은 그 연장선이다. 환자에 대한 마음이 글에 녹아있다. 실제 수필집에는 환자를 치료하면서 느낀 점에 대한 내용이 많이 담겨있다. 애정과 사랑이 싹트면 삶의 애환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환자의 모든 것은 의사와 관련 있다고 봐요. 그 사람의 직업이나 지내온 환경, 지금 하고 있는 고민까지 모든 것이 환자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환자와 의사소통하는 게 중요해요. 말을 듣는 거죠. 진찰하고 치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모든 것에 귀를 기울여야 돼요. 그러다보면 환자가 왜 아프게 됐는지 알 수 있어요. 따뜻한 마음은 기본이죠.”

환자를 대할 때 따뜻한 마음을 강조하는 이 교수는 80여 편에 이르는 논문을 썼다. 왕성한 연구를 기반으로 한 실적이다. 특이한 점은 그 가운데 상당수 논문이 고혈압에 관련된 내용이라는 점. 최근 유명 인기가수가 비교적 젊은 나이에도 불구,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 주위를 놀라게 했다. 과거 50~60대 환자가 대부분이었던 심근경색이 젊은 층까지 내려왔다는 통계도 있다. 심장전문의 이 교수에게 고혈압과 심장 건강에 대해 물었다.

“고혈압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익숙한 병이죠. 우리나라 성인 30% 가량이 경중의 차이는 있지만 고혈압 증세가 있어요. 그만큼 누구나 성인이면 고혈압을 겪을 수 있어요. 그래서 고혈압에 대한 연구도 많이 하고 논문도 많이 냈어요. 한국 고혈압학회에서 총무나 회장, 이사장도 맡았습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성인병, 고혈압을 예방하는 내용을 담은 책도 펴냈습니다. 고혈압이나 심장병을 막기 위해서 무엇보다 생활요법을 강조하고 싶어요. 우선, 체중을 조절하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야 합니다.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수는 없으니 받으면 그것을 바로바로 풀어줘야 돼요. 담배를 피우지 않고, 짠 음식 피하는 것도 기본입니다. 패스트푸드도 가급적 피하는 게 좋아요.”

“글 쓰는 일 좋아하지만 그래도 본업(本業)은 의사”

심장 건강을 지키기 위해 이 교수가 말한 방법은 의외로 거창하지 않았다. 누구나 조금만 신경을 쓰면 생활 속에서 지킬 수 있는 내용이다. 화제를 돌려 그에게 학창시절 이야기를 물었다. 이 교수는 전남대 의과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본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가 됐다. 뒤늦게 한양가족이 됐지만 학교에 대한 자부심은 누구보다 세다. 한양대병원 설립 직후 병원에 들어온 그는 병원의 발전과 애환을 함께 겪고 있는 셈이다.

“대학을 수석으로 입학했어요. 장학금을 계속 받으려면 학부 성적이 꾸준히 좋아야 돼요. 그게 대학 내내 부담스러웠어요. 저는 놀고 싶은데 말이죠. 운동하는 것도 좋아하고, 친구들과 막걸리 마시면서 문학 이야기를 나누거나 당구를 치면서 노는 것을 즐겼습니다. 그러면 스트레스가 해소됐거든요. 당시 어떤 여학생하고 학과 1, 2등을 겨뤘어요. 라이벌이었는데 그 친구는 수업만 끝나면 집으로 곧장 가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럴 때면 ‘나도 공부해야 되는데 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편치 않았죠. (웃음) 지키는 게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쫓기는 사람은 잠을 못 자도, 쫓아오는 사람은 발 뻗고 잘 수 있는 게 세상 이치인 것 같아요.”

마라톤 경기에서도 옆에 함께 뛰는 경쟁자가 있어야 기록이 잘 나오듯 이 교수 역시 대학시절 1, 2등을 다투던 라이벌 여학생이 지금의 그를 만드는데 일조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미로 운동을 꼽는 이 교수는 시간이 날 때면 골프와 헬스를 즐긴다. 친구들과 술 마시는 것도 좋아하는데 건강에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술 약속이 많은 것을 보면 그 역시 의사이기 전에 평범한 사람이다. 그러면서 교수, 의사, 수필가 중에 딱 한 가지만 할 수 있다면 무엇을 하겠냐는 기자의 질문에 웃으며 의사를 택했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용한 점쟁이한테 점을 본적이 있었죠. 아들이 나중에 커서 뭐가 되겠냐고. 그때 점괘가 두 개 나왔는데 하나는 아픈 사람 치료하는 의사였고, 나머지 하나는 법관이 돼 억울한 사람의 원한을 풀어주는 사람이 될 거라 그랬대요. ‘이과계열이어서 의대를 가야되나 보다’라고 생각해서 자연스럽게 의대 진학했어요. 팔자소관이라 생각하고 말이죠. 그렇게 의사생활 하다 보니 40년 가까이 됐네요. 내년에 정년을 맞는데 진료를 계속하고 싶어요. 대학병원이면 좋고, 종합병원 같은 큰 곳에서 일하고 싶어요. 어디선가 불러주지 않겠어요? 그러면서 시간 나는 데로 여행도 다니고, 에세이도 많이 쓰고 그래야죠. 글 쓸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지는 건 좋아요.”


글 : 정 현 취재팀장 opentaiji@hanyang.ac.kr
사진 : 권순범 사진기자 pinull@hanyang.ac.kr


학력 및 약력

이 교수는 지난 69년 전남대학교 의과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했다. 이후 본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78년)하고, 80년 의과대학 조교수가 됐다. 주요 경력으로는 의과대학 심장내과 부교수(82~90년), 미국 오하이오 주 톨리도 의과대학 연수(84~85년), 심장내과 과장(93~97년), 의과대학 부학장(96~00년) 등이 있다. 이 교수는 또한 지난 91년부터 의과대학 심장내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교수활동과 진료를 병행하고 있다. 나아가 그는 현재 대한고혈압학회 회장과 한국 만성질환 관리협회 이사를 맡고 있다. 이 교수는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수필가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 2004년 <에세이문학> 봄 호에 <헌 구두>로 등단한 이후 <바람이 머물던 자리>, <무녀리들의 반란>, <천지로 가는 계단> 등을 저술했고, 최근 <게와 물고기>가 발간 돼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2008-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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