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류마티스 치료와 연구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선구자
세계 루푸스 학술대회(LUPUS & KCR 2023)에서 통합과 화합의 메시지 전달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도전으로 시작한 연구, 멈추지 않을 것"
배상철 의학과 교수는 류마티스ㆍ루푸스 치료 국내 일인자이자 학계가 인정한 세계적 명의다. 그는 임상 연구와 유전역학을 통해 국내 류마티스 치료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배 교수는 한양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그는 하버드대학교(Harvard University) 공중보건대학원에 진학해 임상역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그 후 지석영의학상, 아시아태평양류마티스학회 최우수 임상연구자상, 대한류마티스학술상, 보건복지부장관상, 분쉬의학상, 백남석학상 등을 받으며 최고 의학자임을 증명했다.
그는 현재 한양대병원 류마티스 내과 교수, 한양대 석학교수, 한양대 류마티즘연구원 원장, 한양생명과학기술원 원장 등 다양한 직책을 맡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세계루푸스학회 회장, 세계적인 루푸스 연구자 모임(SLICC) 정회원, 대한민국의학한림원 및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 등 국내외 여러 기관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류마티스학 발전에 힘쓰고 있다. 세계적 명의로 인정받으며 한양을 빛내는 배 교수를 만나 그간의 연구 성과와 계획을 들었다.
'전쟁의 종식으로 가는 계단 (Stairway to the End of the War)'
'제15차 세계 루푸스 학술대회ㆍ제43차 대한류마티스학회 춘계학술대회 및 17차 국제학술심포지엄(이하 LUPUS & KCR 2023)'이 지난 5월 코엑스에서 열렸다. 세계적 명성에 걸맞게 총 50개국 1500여 명의 석학들이 참석해 대회를 빛냈다. 배 교수는 이번 대회의 국내 유치와 성료에 크게 기여했다.
2018년부터 5년간의 노력 끝에 유치한 'LUPUS & KCR 2023'에는 배 교수의 철학과 신념이 담겼다. 슬로건 '전쟁의 종식으로 가는 계단(Stairway to the End of the War)'을 만든 것도 그였다. 슬로건의 의미에 대해 배 교수는 "루푸스 같은 자가면역 질환을 완치해 갔으면 하는 바람과,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인 우리나라가 전쟁을 종식하고 통일을 이루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내년 8월이 정년인데, 30년간의 연구를 정리할 수 있어 뜻깊고 영광스러운 자리였다"고 소감을 밝혔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도전과 빛나는 성과
류마티스학은 근육이나 관절 또는 그 근접 조직에 동통, 운동장애, 경결을 일으키는 자가면역질환을 다룬다. 100개 이상의 류마티스 질환 중 루푸스(전신 홍반 루푸스)는 자가항체와 면역복합체에 의해 인체의 여러 장기, 조직 및 세포가 손상을 받는 질환이다.
배 교수가 류마티스를 전공하게 된 건 그의 신념 때문이었다. 그는 벽오지에서 공중보건의사로 근무하던 중 류마티스 전공 제의를 받았다. 당시 류마티스는 생소한 분야였다.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Prost)의 시<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의 메시지가 인생 모토였던 그는 결국 생소한 류마티스 분야를 선택했다. 당시 그의 류마티스 분과 전문의 번호는 12번이었다.
세부 연구 분야를 선정할 때도 남들이 가지 않은 길에 도전했다. 배 교수는 하버드대학교에서 임상 역학을 연구했는데, 이 역시 당시 생소한 분야였다. 이때 시작한 임상 역학은 지금의 코호트 연구(특정 요인에 노출된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을 추적 및 질병 발생률을 비교해 요인과 질병 발생 관계를 조사하는 연구 방법) 구축에 기반이 됐다.
한양대 류마티스병원, '류마티스 치료의 4차 병원'이 되다
배 교수는 2005년부터 2019년까지 한양대 류마티스병원 원장을 역임했다. 그가 원장으로 있던 14년간 국내 최고의 류마티스 치료센터로 자리 잡았다. 대학병원 등의 3차 병원에서도 해결하지 못한 난치성 류마티스 질환을 배 교수와 한양대 류마티스병원이 치료해 내며 '류마티스 치료의 4차 병원'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류마티스 질환은 생사와 관련 없는 질병이라 여겨지지만, 루푸스의 경우 '천의 얼굴의 질환'이라 불린다. 적절한 치료가 없으면 생명을 앗아갈 정도로 치료 난도가 높기 때문이다. 배 교수는 "예전에는 류마티스 질환에 대해 무지했기에 엉망인 상태로 병원에 오는 환자들이 많았다"며 "꾸준한 연구와 노력으로 류마티스와 루푸스를 널리 알리며 국내 류마티스 치료의 스탠더드를 높였다"고 성과를 평가했다.
배 교수의 철학은 '연구를 바탕으로 한 진료, 진료를 바탕으로 한 연구'이다. 이러한 철학 아래 그는 한양대 류마티스병원 내에 연구와 진료를 함께 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한양대 류마티스병원을 'HIH(Hospital in Hospital)'으로 개념화하고 병원 내 진료와 연구, 행정을 조화롭게 연결했다. 배 교수의 철학은 지금까지 핵심 가치로 남아 있다. 그의 활약으로 한양대 류마티스병원은 '2012 메디컬 코리아'와 '2017 메디컬 아시아'에서 류마티스 부문 대상을 받았다.
류마티스ㆍ루프스 연구에 일생을 바치다
배 교수는 류머티즘 임상, 유전역학 연구의 세계적 선구자다. 그는 1998년부터 코호트를 기반으로 난치성 류마티스, 루푸스를 연구했다. 그 결과 2016년 세계 최초로 루푸스의 새로운 위험 유전자와 후보 치료 약제를 발견했고, 이를 '네이처 제네틱스(Nature Genetics)'에 발표했다. 해당 연구로 루푸스의 정확한 병인을 알아낼 수 있었고, 이는 치료 약제 개발의 중요한 기반이 됐다.
배 교수의 코호트는 세계적 규모를 자랑한다. 25년간 채집한 엄청난 양의 인체 유래물(인체에서 수집, 채취한 조직·세포·혈액·체액 등 인체 구성물 또는 혈청, 혈장, 염색체 등의 물질)이 쌓여 있다. 그가 수집한 인체 유래물은 우리나라 고유의 것이기에 국내 환자 치료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코호트 구축으로 그는 정밀의학의 기초를 만들고 있다. 배 교수는 "정밀의학이란 개인의 유전정보, 임상 정보, 생활 습관 정보 등을 분석해 질병의 예측, 진단, 치료, 예방 등에 관해 최적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술이다"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불필요한 치료를 줄일 수 있고 의료 자원을 효율화해 의료비 부담도 줄일 수 있다.
정밀의학과 후학양성 통해 의학 발전에 기여할 것
배 교수는 현재 한양대 류마티스연구원의 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그곳에서 류마티스 연구를 진행하는 동시에 후학들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배 교수의 활약으로 한양대 류마티스연구원은 2021년 교육부 선정 중점연구소로 지정돼 향후 9년간 연구비를 지원받게 됐다.
그가 원장으로 있는 또 다른 기관인 한양생명과학기술원은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을 모아 시너지를 창출하고 생명과학기술 발전을 도모하고자 설립됐다. 배 교수는 "한양생명과학기술원에서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기술과 인프라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고 이야기했다.
앞으로 배 교수는 '정밀의학'에 집중할 계획이다. 정밀의학은 아직 미완성 단계이기에 연구해야 할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게 더 중요한 것이 남아있다. 바로 '연구 인프라 구축'이다. 배 교수는 "후배 연구자들이 진료와 연구를 잘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한양의 발전은 물론 류마티스와 의학, 더 나아가 우리나라 과학 발전에 큰 도움이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