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1만7천여 킬로미터 떨어진 남극 킹 조지 섬. 이곳에 우리나라 유일의 국제법상 ‘한국령’인 세종과학기지(이하 세종기지)가 있다. 지난 1988년 2월에 설립된 세종기지는 한국의 극지 연구를 수행하는 전초기지로서 20여 년간 많은 성과를 이뤘다.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매년 17명의 대원을 선발하는데, 이들은 보통 1월부터 약 13개월 동안 혹독한 환경과 싸우며 근무하게 된다. 한국 과학 발전뿐 아니라 인류의 미래를 위해 일한다는 사명감으로 뭉친 17명의 대원들이 담당하는 분야는 각양각색이다. 과학의 전초기지인 만큼 연구대원이 주를 이루고, 이 외에도 전기, 주방 등 생활하는 데 기본적으로 필요한 분야를 담당하는 대원도 자신의 임무를 묵묵하게 수행한다. 이 중 동료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의사’가 있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의료 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극지에서 대원들의 건강은 연구를 온전히 수행하기 위해 꼭 지켜야하는 사항이기 때문이다. 심지훈(의학 06년 졸) 동문은 “16명의 주치의나 다름없었다”며 지난 1년을 회상했다. 지난해 1월부터 올해 2월까지 남극 세종기지에서 ‘공중보건의’(이하 공보의)로 근무했던 심 동문을 만났다. 남극 주치의, 전인치료 실천하다. 남극은 동절기에 섭씨 영하 30도, 체감온도 영하 50도까지 기온이 내려가는 혹독한 자연환경을 지녔다. 강한 눈보라가 거의 매일 몰아치는 4월이 찾아오면 세종기지 대원들은 좁은 기지에서 외롭게 생활하며 추위를 견뎌내야 한다. 그나마 심 동문이 처음 남극에 도착한 1월은 남극의 여름에 해당하는 기간이어서 견딜만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추위가 들이닥쳤다. 3월이 돼서야 남극에 왔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는 심 동문. 군 시절을 회상하는 여느 이들처럼 힘든 시간이었다며 앓는 소리를 할만도 한데, 그는 지난 1년을 오히려 여유 있는 시간이었다고 표현했다. “제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공식적으로 맡은 업무는 대원들의 건강과 관련한 일체의 것이었어요. 기초적 건강 검진뿐 아니라 환자 발생 시 진료를 하는 등의 업무죠. 하지만 세종기지에 가는 대원 대부분 기본적으로 건강하기 때문에 안전사고가 아니면 의료 업무가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업무가 과중한 대원을 도와주는 일을 많이 했죠. 공동으로 대처할 일도 많기 때문에 저뿐 아니라 모든 대원이 다양한 업무를 나눠 합니다. 그런 시간 외에는 개인 시간이 비교적 많았기 때문에 생각도 많이 했고, 독서도 할 수 있었어요.” 물론 극지에서 연구하는 대원에게 안전사고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깨가 탈골된 대원도 있었고, 작은 안전사고도 종종 발생했다고 한다. 그럴 때면 자신이 1차 진료를 하고, 외부로 옮겨 치료해야할 필요가 있을 시에는 근처에 있는 칠레 병원으로 송환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지만 17명이라는 적은 수의 대원을 담당하는 심 동문에게 의료 업무가 과중하지는 않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덕분에 심 동문은 환자에게 정성을 다해 진료하는 ‘전인 치료’를 익힐 수 있었다. “13개월 동안 16명의 주치의나 다름없었어요. 그래서 건강에 관한 사소한 상담을 많이 했습니다. 한 번은 당뇨가 있었던 대원 한 분이 상담을 원했는데, 제가 오랜 시간 공부해서 해결 방법에 대한 얘기를 나눴어요. 한국에서는 그렇게 심도 있는 진료를 하기 힘듭니다. 환자는 많고 시간은 부족하니까요. 대원 각자에게 정말 최선을 다해서 진료해주고 상담 했던 경험을 통해 몇 년 뒤 정식 의사가 된 후에도 성심성의껏 환자를 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남극이 준 두 가지 선물, 도전 정신과 사교성 대부분 의대생은 졸업 후 인턴과 레지던트를 수료하고 군의관으로 가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심 동문은 새로운 도전을 감행했다. 당시 생리학을 담당한 교수님이 수업시간 마다 남극 ‘공보의’로의 추억을 자랑스레 말했기 때문이다. 그 추억에는 세종기지와 가까운 칠레 기지 대원들과의 생활도 있었다. 그래서 그는 대학 시절 남미로 배낭여행을 가기도 했다. 배낭 하나 메고 브라질 아마존 밀림을 여행했던 심 동문의 도전 정신이 훗날 남극 세종기지 공보의 근무라는 일을 가능하게 했다. “주변 사람 반응은 딱 두 가지였어요. 부럽다는 사람과, 놀랍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부러워하는 사람은 언제 남극을 가보겠냐는 이유였고, 놀란 사람들은 아무도 하지 않는 일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죠. 어머니께서도 처음엔 많이 놀라셨습니다. 남극이 위험하다고 생각하셨나 봐요. 하지만 건강하게 다녀오고 나니 모두 부러워했습니다. 쉽게 경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 심 동문의 특별한 경험이 쉽게 이루어진 건 아니다. 원하는 사람 모두가 남극 세종기지에 갈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해양연구소 부속 ‘극지연구실’에서 매년 한 명의 세종기지 공보의를 선발하는데, 2006년 당시에는 10명의 지원자가 몰렸다고 한다. 그가 시험과 면접을 당당히 통과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뛰어난 ‘사교성’이었다. 1년여 동안 좁은 공간에서 17명이 부대끼며 지내야 하기 때문이다. 심 동문은 학생 시절 열심히 동아리 활동에 참여했던 경험으로 ‘사교성’을 기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의과대학 내 신문사인 ‘한양의보사’와 여행 동아리를 함께 했어요. 신문사에서는 사회를 바라보는 힘을 길렀고, 여행 동아리에서는 강한 체력과 도전정신을 기를 수 있었습니다. 세종기지가 가지는 사회적 의미, 그 곳에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는 대원들의 책임감, 그리고 아무나 경험할 수 없는 오지에서의 생활이 저에게 전혀 낯설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동아리 활동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남극 생활 전반에 대해 원활하게 이해할 수 있었기에 다른 대원과도 친밀하게 지낼 수 있었어요.” “가장 큰 변화는 삶의 여유 되찾은 것” 누구와도 잘 어울릴 수 있는 친화력으로 심 동문은 세종기지에서 약 1년의 시간을 외롭지 않게 보낼 수 있었다. 이런 기억은 그에게 또 다른 ‘여유’를 가능하게 했다. 심 동문은 공보의로 군복무를 마치고 바로 학교로 돌아오기 보다는 북극이나 아프리카 등 다른 오지로 떠나보고 싶다고 한다. 현재 병원에서 레지던트 생활에 정신이 없는 동기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지만, 그들이 자신을 부러워하기도 한다고. 그는 바쁜 일정에 시달릴 의사의 삶에서 여유를 찾은 것이 그가 남극에서 얻은 가장 큰 변화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생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보니 책도 많이 읽었고,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주로 제 자신이나 인생에 대해서 고민했습니다. 젊은 시절에 너무 바쁘게 달리기만 하면 훗날에 금방 지칠 거 같아요. 어느 정도 여유를 가지고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결론을 낸 거죠.” 서서히 남극 생활에 적응해 간 심 동문은 세종기지를 집 같이 편안하게 느끼게 됐다고 한다. 기지 주변이 전부 하얗게 뒤덮여 있었다고 회상하는 그는 마음에 평화와 안식만 남았던 기억을 오래도록 잊지 않을 거라고 했다. 전역 후 본격적으로 인턴과 레지던트를 시작하면 굉장히 바빠질 심 동문에게 남극에서의 생활이 잠깐의 ‘쉼표’가 된 것이다.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것이 중요해” 심 동문은 삶의 여유뿐 아니라 마음의 여유 역시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의 좌우명은 “밑지며 살자”다.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지 말고, “몸이 불편하더라도, 주머니는 가볍더라도 마음이 편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는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그의 바람과도 일맥상통한다. ‘속물적’이지 않은 의사가 되기 위해 그는 자신의 안위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이 되려는 것이다. 또 현재 위치에 안주하지 않기 위해 다양한 일에 도전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그는 설명했다. 후배들에게도 여유와 도전을 강조했다. “안되더라도 한 번 도전해보세요. 한 번 시도해 보는 게 중요합니다. 저도 처음 세종기지 대원으로 지원할 때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했어요. 경험도 부족하고 특별히 내세울 것도 없었거든요. 하지만 도전하니 됐습니다. 쉽게 포기하지 마세요. 무엇이든 남의 시선은 신경 쓰지 말고 스스로 도전을 해보는 것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 좋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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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나원식 취재팀장 setisoul@hanyang.ac.kr 사진 : 권순범 사진기자 pinull@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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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