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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의무사령관 취임한 김상훈 동문
조회 2318 2016-02-17 11:50:56

68만 대군의 건강을 책임지는 사람. 군 장병의 질병 치료를 비롯해 건강관리 및 군 의무분야를 관장하는 지휘관. 전국 16개 군병원과 국군군의학교, 의무교육기관, 국군간호사관학교, 의학연구소 등 국방부 산하 21개 부대를 통제하는 사령관. 그는 본교 의과대학 안과를 졸업하고 예방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상훈(의대 81년 졸) 동문이다. 김 동문을 인터뷰하는 길은 쉽지 않았다. 직접 통화하기도 어려웠고, 어렵사리 잡은 일정도 의무사령관이라는 직책의 바쁜 일정 탓에 변경되기도 했다. 인터뷰 당일에도 청와대에서 노대통령이 군 장성들에게 이른바 ‘제대 신고’를 했던 전군 주요지휘관회의 참석 일정으로 두 시간 가량 연기되기도 했다.

어렵게 성사된 인터뷰를 하러 가는 길도 쉽지 않았다. 2호선 선릉역에서 분당선으로 갈아타 다시 사십 분 남짓 걸려 서현역에 도착했다. 다시 택시를 타고 의무사령부가 위치한 국군수도병원으로 향했다. 검문소에 도착해 신분증을 맡기니 곧장 사령부 건물로 안내해줬다. 김 동문이 있는 방 앞에는 영관급 장교를 포함, 전속부관과 정훈장교 등 위관급 장교와 사병들이 대기하며 기자를 맞았다. 새삼 군 시절이 떠올랐다. 은빛 별 모양의 계급 뒤 빨간 바탕에는 불이 들어와 있었다. 방송으로 치면 ‘방송 중(ON AIR)’인 셈이다. 김 동문을 만나 취임인사를 건너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지난 달 취임하고 나서 많은 분들의 축하를 받았습니다. 기쁘기도 하지만 어깨가 무거워요. 취임 직후 곧장 업무 파악에 들어가 정신이 없는데 특히 요즘 군 의료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서 여기에 부응해야한다는 책임감을 많이 느낍니다. 제 임기가 2년인데 어떻게 보면 긴 시간인데도 벌써부터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요.(웃음)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군 병원이지만 국내 유수 민간의료기관 못지않게 환골탈태(換骨奪胎) 시킬 생각입니다. 우리 한양 가족 여러분께서 계속 지켜보고, 성원도 많이 해 주세요.”

얌전하고 말수 적었던 의대생이 의무사령관이 되기까지

한양 가족들의 성원을 부탁한다고 말하는 김 동문은 의과대학 75학번이다. 스스로 얌전하고 조용한 성격이라고 말하는 김 동문의 학창시절은 그의 성격과는 달리 순탄치만은 않았던 모양이다. 안과를 전공하고, 예방의학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은 그에게 오랜 기간 학교에서 지내면서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일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의외로 연탄가스에 중독됐던 이야기를 꺼냈다. 생사의 기로에 섰던 기억 때문에 지금도 학창시절을 떠올리면 그때가 생각난다고 한다.

“제가 집이 제주도입니다. 지방에서 서울로 유학 와서 자취나 하숙을 하면서 보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기름보일러가 아주 귀해 주로 연탄으로 난방을 했는데 어느 해 겨울에 자다가 연탄가스에 중독이 됐습니다. 운이 좋았던지 같이 살았던 친구가 저를 흔들어 깨우고, 동치미 국물 마시게 하고, 마요네즈도 먹인 후에 급히 저를 업고 병원에 데려갔었죠. 치료를 받고 목숨을 건졌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데 그래서인지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때 그 친구가 없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있지도 못했을 겁니다.”

군의관으로 군대생활을 하면서도 학창시절을 자주 회상한다고 말하는 그는 왜 의대에 입학 했냐는 기자의 질문에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김 동문은 어렸을 때 또래 친구들에 비해 몸이 많이 약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잔병치레도 많았다. 이후 의사를 볼 때마다 ‘나도 나중에 커서 저 사람처럼 흰 가운을 입고 병을 고쳐야지’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의대생이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군의관을 평생 업(業)으로 삼는 것은 색다른 경우다.

“아주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누구나 군대는 가야 되는데 저 역시 의대를 졸업하고 군의관으로 임관해 군 생활을 했어요. 제대를 얼마 앞두고 선배 장교가 ‘장기 군의관에 지원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라고 제의를 했고, 자세히 설명해 줬습니다.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도전해볼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 돼 군인의 길을 걷게 됐죠.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습니다. 딱 맞는 옷을 입고 있는 느낌입니다. 아직도 친구들을 만나면 ‘네가 어떻게 해서 군인이 됐느냐’고 놀립니다.”

경청(傾聽), 입이 하나고 귀가 두 개인 이유

어른들과 군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군대 많이 좋아졌다’라는 말을 듣는다. 오래 전에는 몸이 좋지 않아 의무실을 찾으면 증상과 관계없이 ‘감기약 진통제’를 줬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군 의료기관이나 시설도 민간 부문 못지않게 많은 발전을 보여주고 있다. 계약직으로 민간 의사들을 대거 채용하고, 보수 수준도 현실화하기 위해 해마다 급여를 인상하고 있다. 국군수도병원은 현재까지 주로 군인과 군인 가족에 한해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응급진료에 한해 제한적으로 일반인 치료도 맡고 있다. 그러나 김 동문은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분위기가 성숙되면 일반인에게도 수도병원의 문을 활짝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병원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유능한 의사와 다양한 사례의 환자가 많아야 해요. 그게 기본이죠. 군 병원의 특성상 환자 사례가 민간 병원처럼 많지는 않습니다. 주로 디스크, 관절염, 화상과 관련된 환자가 대부분입니다. 이를 이용해 특성화 전략을 펼칠 생각이에요. 환자 사례가 많은 디스크나 관절 분야를 특화시켜 국내 어떤 병원보다 뛰어난 수준으로 끌어 올리고, 환자 사례가 적은 분야는 과감하게 민간에 치료를 위탁하는 방식입니다. 이를 위해 우선, 민간에서 계약직 의사를 채용해 연구할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 주고, 이들을 붙잡기 위해 보수도 현실화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국민들이 군 의료시설을 신뢰할 수 있도록 투명하게 운영하는데 주안을 두고 있습니다.”

국군수도병원을 비롯해 의무사령관 지휘체계 아래에 있는 모든 의료기관을 발전시킬 복안에 가득 차있는 김 동문에게 살아가면서 아끼는 금언이나 신조(信條)를 물었다. 그는 두 가지를 강조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과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 첫 번째 말은 기자 역시 군복무를 하면서 자주 들었던 말이었다. 이왕 해야 할 일이면 즐거운 마음가짐으로 해야 능률이 오른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마음 먹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군인과 의사의 직업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김 동문은 이제 대한민국 군(軍) 의료를 책임지는 수장이 됐다. 지도자가 될수록 남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하는 그는 좋은 의사도 결국 환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라 설파했다.

“제가 원래 말을 많이 하는 성격이 아니기도 하지만 남의 말을 듣는 것을 좋아해요. 환자를 치료하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의사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요즘 의사들이 시간에 쫓겨 환자 말을 잘 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환자가 한 마디만 해도 ‘알았다’고 답하는 식이죠.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 차원에서 환자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의사가 참된 의사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군 의료기관에 복무하는 모든 군의관들에게도 ‘환자의 말을 경청할 것’과 ‘알기 쉽게 설명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한발 나아가 부지런히 자기계발 해서 최상의 의료지식까지 갖추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블루오션(Blue ocean) 세계를 개척하라”

배려와 경청을 강조하는 김 동문도 처음부터 군의관을 꿈꿨던 것은 아니다. 그 역시 우연한 기회에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게 됐다. 그 내면에는 의대생은 의사가 되고, 법대생은 법조인이 돼야한다는 고정관념을 타파했던 것이 계기가 됐다. 의대를 마치고 의학전문기자의 길을 걷는 이도 있으며 기초의학을 연구하는 연구자도 있다. 법대의 경우 법조인 외에 기업 등 다양한 분야·직종에서 일하고 있다. 선배 장교의 조언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사회에서 평범한 의사가 돼 있었을 것이라 말하는 김 동문은 조금만 생각을 달리하면 다양한 길이 있으니 도전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가 학교 다닐 때도 그랬지만 의대를 졸업하고 다들 의사가 되려고만 합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면 다양한 길이 많아요. 의사라고 해서 임상의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연구직이나 보건 정책을 담당 등 다양한 영역에 대해서도 진출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편으로 군의관이 되고자 하는 후배가 있다면 도전해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군의관을 업(業)으로 삼는 것도 블루오션(Blue ocean)이 될 수 있다 생각합니다.”

인터뷰를 하는 중에도 바깥에서 결재를 기다리는 장교들이 여럿 있었고, 전화벨도 연신 울리고, 그를 기다리는 회의도 잡혀있었다. 군 의료기관의 효율성을 높이고, 잘하는 분야를 특성화시켜 전문 병원 형태로 만들겠다고 말하는 김 동문을 보니 그의 말대로 남은 2년이 금방 지나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월이 흘러 은퇴를 하게 되면 ‘의사는 평생 직업이니 사회 나가서도 의사를 하지 않겠느냐’며 웃어 보이는 김 동문을 보면서 2년 후 발전해 있을 군 의료기관을 그려보며 집무실을 나섰다.


글 : 정 현 취재팀장 opentaiji@hanyang.ac.kr
사진 : 권순범 사진기자 pinull@hanyang.ac.kr


학력 및 약력

김상훈 동문은 본교 의과대학을 81년에 졸업하고 그해 4월 군의관으로 임관(군의 11기)해 군 생활의 첫 걸음을 시작했다. 의무복무기간을 마친 후 그는 장기 군의관 복무를 신청했다. 이후 김 동문은 지난 91년 국군춘천병원장을 역임한 것을 시작으로 국군일동병원, 국군창동병원에서 각각 병원장을 맡았다. 이후 지난 97년 12월에는 국방부 보건환경관실에서 보건담당관을 맡아 국군 보건정책을 진두지휘했다. 이어 지난 99년에는 국군서울지구병원장을 지냈고, 2001년 국군수도병원장, 2003년 국군대구병원장, 2005년 군의학교장과 육군본부 의무근무처장 등의 보직을 맡았다. 그리고 올해 11월 국군의무사령관(육군 소장)에 취임해 2009년 11월까지 2년간의 임기를 시작했다. 현재 소장 진급예정자인 김 동문은 내년 1월 1일, 육군 소장으로 진급한다.

2007-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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