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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외박애상 수상한 의대 곽진영 교수
조회 2655 2016-02-17 10:48:59

“남이 안 하는 것을 하고 싶었습니다.”

남들이 생각지 못하는 것에 도전하고픈 젊은 의학도가 있었다. 그는 의료계에 투신하며, 평생을 투자할 미개척 분야를 찾았었다. 그래서 결정한 것이 바로 장기이식. 당시 누구도 관심 갖지 않던 장기이식의 길을 걸어온 지 30여년, 이제 그는 이 분야의 선구자가 됐지만, 아직도 연구에 대한 열정만은 여느 젊은 의학도에 못지않았다. 모든 이들에게 일률적으로 주어지는 정년이란 시간은 그에게 그다지 의미 있는 단어가 아니었다. 국내 최초로 뇌사자의 장기이식술에 성공하고 관련법 제정에 노력해 온 의대 곽진영 교수. 그는 그의 삶과 연구에 대한 공치사에 “그저 나눠 주는 삶을 살았을 뿐”이라며 담담하게 답한다. 대한병원협회와 중외제약이 공동으로 선정한 제12회 중외박애상을 수상한 곽진영(의대·외과)교수를 위클리 한양이 만났다.

뇌사자의 장기이식 문제는 윤리적으로도 민감한 사안이다. 뇌사자의 장기이식을 고안한 배경과 과정을 설명해 달라.

내가 의과 공부를 할 당시 가장 미 개척된 분야가 장기이식이었다. 당시 일년에 두세 번 밖에 장기이식 수술이 실시되지 않았다. 오슬로에서 공부할 당시에도 이 분야를 배워가서 실천에 옮길 수 있을까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보니 역시 염려했던 것처럼 이식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장기 이식을 해야 하는 환자가 생기면 시어머니가 혹은 아들이 반대한다며 가족부터가 이식을 꺼렸다. 단순히 가족에게 받는 것만으로는 이식 문제를 해결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고안해 낸 것이 뇌사환자에게서 장기이식을 받는 것 이었다. 79년도 본교에서 국내 최초로 뇌사환자 장기이식에 관련한 팀을 구성해 뇌사환자 장기이식술을 시행했다. 당시에는 뇌사에 관련된 법이 없었기 때문에 이 시술은 위법이었다. 하지만 이 시술로 인해 우리 팀은 ‘뇌사’라는 이슈를 사회에 던져 놓는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 그 전까지는 일반 사람들이 뇌사라는 용어의 정의도 모르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이 때부터 점차 뇌사에 관한 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고, 이런 배경으로 뇌사자의 장기이식과 관련한 법률 제정 과정에 깊숙이 관여하게 됐다. 2002년부터 관련 법률이 시행되고 있다.

세계 최초 신장교환이식 프로그램을 만든 장본인이라고 들었다. 어떤 동기로 프로그램을 만들게 되었나?

뇌사자의 장기이식에 관련한 법을 만들었지만, 장기이식 문제가 말처럼 쉽게 되지 않았다. 가족이 장기를 환자에게 주고 싶어도 혈액형 등이 안 맞아서 못 주게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환자가 끝내 장기를 얻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장기를 이식하려는 사람들을 모아서 조건이 맞을 경우 교환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신장교환이식 프로그램을 만들게 된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우리나라 이외에 어느 나라에도 유래가 없는 세계 최초 프로그램이다. 신장교환이식 프로그램을 통해서 약 1백 여명이 넘는 환자들의 생명을 구했다. 나는 많은 환자들 중에서도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인 환자들을 택해서 수술의 우선권을 주려고 노력했다. 그 외에도 91년도에 불법 매매로 거래된 장기의 유통을 막고 순수한 입장에서 남에게 희사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장기이식에 관련한 프로그램을 한 사회봉사단체와 합심해 만들었다. 순수한 기증자가 기증한 장기를 우리병원 측에 전달하는 형식으로 이뤄진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기증자가 없어 목숨을 잃을 뻔했던 3백여 명의 환자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다른 쉬운 길을 선택할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미개척 분야에 도전한 이유가 있다면

1965년 내가 졸업 할 당시에는 의사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또 1970년도에 장기이식에 관한 공부를 하러 외국으로 가는 사람은 두 세명에 불과했는데 그 중 한명이 나였다. 의대를 졸업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병원을 개업해서 개인병원을 운영했다. 하지만 나는 학교에 남아서 남이 좀 안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특히나 환자에게 더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는 분야를 공부하고 싶었다. 소외받고 의료혜택을 못 받는 많은 환자들을 도울 수 있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 이식에 관련한 전공을 택한 것에 대해 지금도 아주 만족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장기이식 발전에 조금이라도 기여했다는 측면에서 자부심을 느낀다.

장기이식술을 시행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

지금은 의료보험으로 상당 부분 의료비 절감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지만, 장기이식이 행해지던 초창기에는 전혀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의료비 문제로 힘들어하는 것을 볼 때 가장 마음이 아펐다. 또 이식이 잘 되면 괜찮지만 그렇지 못해 합병증이 발생한 경우와 이식을 성공적으로 수행했음에도 환자의 면역성 때문에 환자가 고통스러워할 때 의사로서 가장 힘들었다. 장기이식을 공부하러 외국에 간다고 했을 때 어떤 동료는 왜 그렇게 골치 아픈 일을 택하느냐고 했다. 물론 쉽지만은 아닌 일이다. 하지만 이런 노력들이 모여 의료계 발전의 탄탄한 기초가 된다고 생각하면 보람을 느낀다.

장기이식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은 아직도 미비하다.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장기는 환자의 가족이 주는 형태가 가장 이상적이다. 아무리 황금만능시대라고 해도 돈이 가족의 사랑을 대신할 수는 없다. 병원에 돈만 던져 주고 환자를 팽개치는 가족을 꽤 많이 봐왔다. 이런 사람들의 인식 때문에 장기 매매가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매매 조차도 할 수 없는 사람은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다. 장기 중에 하나를 떼어줘도 건강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 그럼에도 나눔의 정신을 외면하는 가족들이 아직도 많다. 장기이식에 대한 인식의 올바른 정립이 절실히 필요하다.


김지민 학생기자 jimin@ihanyang.ac.kr
사진 : 변대섭 학생기자 tovegout@ihanyang.ac.kr

2004-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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