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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만성, 자랑스러운 한양인
조회 5916 2016-02-18 14:08:51

인생사 새옹지마다. 지금의 실패가 복으로 다가올 수도, 지금의 성공이 독이 될지도 모른다. 대입실패, 재수, 예과 1학년 낙제. 어쩌면 실패라고 생각할 수 있었던 시기를 지나 핵의학과 분자영상 분야 발전에 공헌을 인정받고 당당히 ‘2014 자랑스러운 한양인상’을 수상한 김천기 동문(의학.73)은 인생사 새옹지마라 말한다. 자신의 삶을 즐기며,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 결국 세계 최고의 대학 하버드대 의대 교수에 오른 김 동문을 만났다.

자랑스러운 한양인, 핵의학 전문가

김 동문은 1980년 우리대학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 후 미국 내 유명대학(University of Rochester, University of Pennsylvania)과 의료기관에서 인턴과 레지던트, 펠로십을 거쳐 하버드대 의과대학 영상의학(Radiology)과 교수로 부임했다. 현재는 미국 핵의학회 이사로 활동하며 분자영상과 핵의학 계통의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다.

지난 1월 12일 동문회관에서 진행된 신년회에서 '2014년 자랑스러운 한양인상'을 수상한 (가운데)김천기 동문(의학.73)의 모습.(출처 : 양원찬 동문 페이스북)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핵의학이란 방사선 및 안정된 핵종의 특이한 성질을 이용해 신체의 상태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의학의 전문 분야이다. 핵의학에 대해 김 동문은 재미있는 예를 들어 설명했다. “핵의학은 현재 엑스레이와 같은 영상의학의 한 분야입니다. 하지만 그 방법에 차이가 있죠. 예를 들어 산 속에 숨어있는 무장공비를 찾는다고 해봅시다. 엑스레이는 헬리콥터를 띄워 밝은 불빛을 켜 숨어있는 무장공비를 찾아내는 것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반면 핵의학은 헬리콥터 대신 냄새를 잘 맡는 개를 풀어놓고 개의 꼬리에 불빛을 달아놓는 것입니다. 무장공비의 생리현상으로 발생하는 냄새를 맡은 개들이 모여 만들어낸 불빛을 통해 무장공비를 찾는 것이죠. 두 방법 모두 각각의 장단점을 갖고 있으며, 현재에는 이 두 방법이 합쳐져 가는 추세입니다.”

쉽지 않은 미국생활, 버텨낼 수 있었던 원동력

김천기 동문은 연구에 대한 '흥미와 재미'를 원동력으로 꼽았다.

한국에서 졸업 후 바로 미국 행을 택한 만큼, 지금의 자리의 오르기까지 어려움도 많았을 것. 김 동문은 미국생활의 어려움으로 영어와 차별을 꼽았다. “미국에서 학교를 다닌 경험 없이 성인이 되어 미국으로 건너갔기 때문에 당연히 언어에 대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영어 교육이 지금 같지 않았기 때문이죠. 읽는 것은 7배, 쓰는 것은 20배 정도 다른 사람보다 느렸던 것 같아요. 영어는 지금까지도 어려움으로 남아있습니다. 인종차별 같은 경우는 없는 듯 하면서도 위로 올라갈수록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것을 조금씩은 느꼈습니다. 특히 같은 외국인끼리 차별하는 경우, 예를 들면 인도사람이 미국인과 저를 차별대우 할 때는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죠.”

외국에서의 생활을 결심한 이상 어려움은 계속될 것이며, 이를 이겨내고 견뎌내며 사는 것이라 김 동문은 말한다. 갖은 어려움 속에서도 김 동문을 버티게 한 원동력은 연구에 대한 ‘흥미와 재미’였다. “처음에는 살아남기 위해 악착같이 버텨냈죠. 학교를 다닐 땐 핵의학 분야에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제가 수학과 물리를 참 좋아했습니다. 핵의학이 수학과 물리에 밀접한 학문이라 레지던트 2년차에 외과에서 핵의학으로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그 선택이 지금까지도 천운이라 생각하고 핵의학을 연구하는 것은 제게 천직이라 느끼고 있어요. 연구에 흥미가 생기고 재미가 생겨 열정을 가지고 하다 보니 어려움을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

김 동문의 열정으로 닦아놓은 길은 다른 후배들의 미국생활에 커다란 밑거름이 되었다. 같은 하버드대 의대에서 교수 생활을 하고 있는 김서영 동문(의학.00)과 보스턴 대학교(Boston University)에 있는 김동욱 동문(의학.02) 등 미국으로 건너온 후배들에게 진로에 대한 조언과 추천서 등을 통해 직접적인 도움까지 아끼지 않았다. 현재 우리대학 총동문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김 동문은 “보스턴에서도 우리대학 동문들과 두세 달에 한 번 정도는 모임을 갖는다”고 말했다.

좋아하는 일을, 최선을 다해서

김 동문의 학창시절은 파란만장했다. 음악을 좋아했고 노는 것을 좋아했던 소년은 고등학교 1학년,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그 후 김 동문의 인생은 기타와 함께 했다. 기타와 함께 보낸 예과 1학년은 낙제라는 결과를 가져왔지만 74학번 입학식 때 재학생 대표로 무대에 서 노래를 했다. 실제 가수 전인권씨와 막역한 친구인 김 동문은 최근까지도 전인권씨의 공연에 게스트로 무대에 올라가기도 했다고 한다. 기타 치는 낙제생에서 자랑스러운 한양인상을 수상한 하버드 의대 교수가 된 김 동문은 겸손하게 짧은 수상소감을 남겼다. “기쁘고 행복한 마음과 송구스럽고 죄송하기까지 한 마음이 함께 들었습니다. 긴 외국 생활로 실제 학교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진 못했다고 생각해서지요. 더 자랑스러운 한양인이 되라는 의미로 상을 주신 것 같습니다.”

김천기 동문의 인터뷰 장소까지 찾아온 전인권 씨의 모습을 통해 둘 사이의 오랜 우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김 동문은 한양인들에게 조언을 남겼다. “재수를 하고, 예과에서 낙제한 내 모습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겠죠. 지금 잘 안됐다고 낙담할 것도, 잘 됐다고 기뻐할 것도 없습니다. 이런 일들은 수 없이 반복될 테니깐요. 결국 중요한 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최선을 다해서 행하는 것입니다. 그런 인생은 돈을 떠나 분명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에요. 저도 앞으로 남은 생에 무엇을 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작은 일이라도 열심히 할 것입니다. 취미생활을 통해 저만의 에너지를 충족시키면서 말이죠.”





박종관 기자
pjkko@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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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조유미 기자
lovelym2@hanyang.ac.kr

 

2015-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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