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를 조작해 병을 치료하고 우수한 형질을 살리는 것은 과학자들의 오랜 꿈이다. 1960년대에 분자 생물학이 왕성하게 발전하면서 특정 유전자만을 발현시키거나 일부 유전자를 변환하는 유전자 조작에 대한 연구가 시작됐다. 유전자 가위를 통해 유전자의 일부를 절단하고 새로운 형질을 심거나 일부 유전자를 삭제하는 것이다.
기존의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유전자 변환은 돌연변이를 생성하는 문제가 있었지만 김형범(의대∙의학) 교수는 새로운 유전자 가위를 연구해 이를 극복했다. 김 교수는 RNA 유전자 가위(RNA-guided engineered nuclease, RGEN: 미생물의 면역체계 시스템을 이용해 특정 유전자 염기서열을 절단하도록 고안된 인공제한효소)를 이용한 유전체 교정 기법을 유전체 분야 국제 학술지 게놈리서치(Genome Research) 에 발표했다.
필요한 부분만 자를 수 있는 RNA 유전자 가위
유전자 가위는 유전자를 자르는 효소다. RNA 유전자 가위는 Cas9 단백질(유전자 가위 단백질)과 가이드 RNA(RNA 유전자 가위의 유전자 특이성을 결정하는 작은 RNA 분자)가 체내에서 발현하면서 만들어진다.
가이드 RNA와 Cas9라는 단백질이 세포 내에서 결합해 증식하면서 RNA 유전자 가위를 만든다. 기존의 RNA 유전자가위 연구는 RNA 유전자 가위를 세포에 직접 삽입하지 못하고 Cas9 단백질과 가이드 RNA의 결합물을 통해 유전자 가위를 목표 유전자에 삽입했다. 배양된 유전자를 타겟 세포 내에 직접 넣는 것이 아니라 플라스미드(Plasmid, 독자적으로 증식하는 DNA, 조작된 DNA를 생물체 내에서 발현하는 운반책 역할을 한다)를 넣어서 전달했다. 하지만 플라스미드 역시 DNA의 일종이기 때문에 유전체에 삽입되면서 그로 인한 돌연변이가 나타나는 것이 기존 연구의 한계였다.
김 교수의 RNA 유전자 가위의 핵심은 플라스미드를 사용하지 않고 RNA 유전자 가위를 직접 세포에 삽입하는 것. “저희 연구진은 Cas9단백질과 가이드 RNA를 플라스미드를 통해 운반하지 않고 각각 세포 투과성 단백질과 결합시켜서 세포 내로 자동으로 들어가는 자동 RNA 유전자 가위를 개발했습니다. 세포투과성 단백질은 주입할 세포의 벽을 뚫고 Cas9 단백질과 가이드 RNA를 세포에 집어넣습니다. 플라스미드 같은 불필요한 DNA가 삽입되지 않고, 세포 안에서 별도의 발현과정이 필요 없기 때문에 유전자 가위의 정밀한 조작이 가능합니다.” 이 연구를 통해 세포 내 효율적인 유전자 교정이 가능해졌다. 의도치 않은 돌연변이도 크게 감소했다. 개선된 절단 기술을 통해 DNA 염기서열이 원치 않게 유전자 가위에 의해 잘리는 것을 방지하고, 따라서 변이가 감소했다는 이야기다.
유전자 및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의 포석
김 교수는 유전자 가위가 무궁무진하게 활용될 수 있다고 전했다. “유전자 가위를 통해 잘못 된 유전자를 잘라서 제거하고 수정하거나, 새로운 유전정보를 삽입할 수 있어요. 우선 연구목적으로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습니다. 특정 유전자를 제거했을 때 동식물에 나타나는 변화를 보고 해당 유전자의 기능을 알 수 있어요.”
김 교수의 RNA 유전자 가위가 상용화되면 유전자 및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에 널리 활용될 전망이다. “이 기술은 HIV 바이러스를 비롯한 유전병을 비롯한 질환을 고치는 치료법으로 쓰일 수 있습니다. 산모 체내에 있는 태아의 유전병을 미리 진단해 임신상태에서 태아의 유전자를 조작해 치료하는 연구도 준비 중입니다. ”
“가지 않은 길이 더 재미있다”
의과대학을 졸업한 김 교수는 남들처럼 의사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연구자의 길로 전향했다. “병원에서 레지던트로 근무하면서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아무리 실력이 좋은 의사라도 약이 없고 치료기술이 없으면 환자를 살릴 수 없잖아요. 사람을 직접 구하는 것 보다, 구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김 교수는 연구가 창의적이거나 도전적일수록 의욕이 샘솟는다고 했다. 그는 “실험 결과가 너무 안 나오면 가끔 ‘의사가 될 걸 그랬다’ 고 후회도 했다”라며 웃었다. 그러나 지치지 않고 열정을 가지고 임했기에 이번 연구는 1년만에 성공했다. 몇 년씩 실험해야 성과를 낼 수 있는 생명공학 연구의 특성상 김 교수의 성과는 매우 고무적이다. 안정적이거나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 대신 즐거운 일을 택했다는 그는 의욕이 넘쳤다. “단 1명의 환자라도 더 구할 수 있는 연구를 하겠다”라며 각오를 밝힌 김 교수는 앞으로 차세대 유전자 가위를 활용한 유전병 치료법 개발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 김선희 학생기자
- pdg10@hanyang.ac.kr
-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권요진 사진기자
- loadingman@hanyang.ac.kr
- 2014-0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