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의 그림은 수많은 정보를 한눈에 담아낸다. 의학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근육, 신경, 뼈와 같이 난해한 부분을 그림으로 제공하면 대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메디컬 일러스트(Medical Illust)’는 그림을 통해 의학과 대중 사이의 소통을 위해 힘쓰는 분야다. 그 선두에 윤관현 동문(해부학박사.12)이 있다.
‘그림’으로 과학문화 발전에 기여하다
윤관현 동문은 작년 12월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수여하는 ‘2013년 대한민국과학문화상’을 수상했다. 본 상은 과학 문화 발전에 기여한 개인 및 기관을 발굴하여 수여하는 상이다. 윤 동문은 해부학 연구와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몸 해부 그림’, ‘해부 그림 사진전’, ‘다빈치 아카데미’ 등을 통해 의과학과 예술의 융합을 통해 창의적인 융합문화 확산에 공을 세웠고, 메디컬 일러스트의 한국화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본 상을 수상했다. 윤 동문은 “일반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공로를 인정해준 것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메디컬 일러스트, 의학인가 예술인가
메디컬 일러스트는 복잡한 의학 지식을 시각적으로 표현해 사람들의 이해를 돕는 그림이다.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인체의 각 부분을 표현한다. 메디컬 일러스트를 위해서는 의학적 지식과 미술적 표현 두 가지 역량이 모두 필요하다.
서양에서는 16세기 르네상스 시대부터 사람의 ‘인체’를 다루는 해부학과 미술이 두루 발전했다. 인체는 의학적 연구대상이자 미적 탐구대상이었다. 따라서 의학과 예술의 접점인 ‘메디컬 일러스트’는 단연 일찍부터 익숙한 개념이었다. 하지만 ‘정신’을 강조하는 동양문화권에서 메디컬 일러스트는 생소하다. 인체를 유심히 연구하고 탐구한 역사적 경험이 없기 때문. 하지만 윤관현 동문의 노력이 국가적으로 인정받으면서 메디컬 일러스트는 이제 의학과 예술을 아우르는 독자적 지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메디컬 일러스트는 하나의 작품이고 예술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예술과는 다르다. 메디컬 일러스트는 정보 전달이 중요해 간략하게 표현하는 특성 탓에 예술가의 개성이 드러날 여지가 사라진다. 개성을 일러스트에 입히는 것은 이 분야에 몸담은 사람들의 공통된 염원이다. 윤 동문은 “의학 삽화라 하더라도 예술성을 가지게끔 노력한다”며 “기법에서 일러스트레이터의 개성을 부각하기 위해 고민한다”고 말했다.
미개척 분야를 걷다
1995년까지 홍익대학교에서 순수 미술을 공부한 윤관현 동문은 1997년 우연히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교실의 ‘삽화 조교’로 들어갔다. 윤 동문은 “1997년부터 메디컬 일러스트 분야에 몸 담은 것은 아니었다”며 “미술에 대한 감각을 향상시키기 위해 잠시 해부학 분야를 접한 것”이라고 말했다. 해부학교실에서 3년 동안 해부학 실습에 참여하고 그림을 그리다 보니 인체 구조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때부터였다. 윤 동문은 “해부학을 접할수록 이를 통해 나만의 예술 작업을 하고, 미개척 영역을 개척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며 “개척자의 마음으로 제대로 된 길을 만들고자 노력했다”고 말했다. 또 그는 “남들이 시도하지 않은 분야에서 작업한다는 것, 그리고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한다는 의미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고 자신의 분야에 대한 확신을 덧붙였다.
윤 동문이 메디컬 일러스트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외국 의학 삽화를 모사하는 수준이었다. 미술 전공자가 해부학적, 임상적으로 모든 정보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 메디컬 일러스트는 작업을 의뢰한 의사들과의 소통을 통해 그림의 방향을 찾는다. 일러스트레이터는 실제 해부에 참여하기도 하고, 토론을 통해 의견을 조율해 나갔다. 윤 동문은 “메디컬 일러스트는 미술적인 표현능력과 의학적인 지식의 융합이 이뤄지는 분야”라며 “대중들과 의학이 소통하는 통로 역할까지 수행한다”고 말했다. 이어 윤 동문은 “의사의 시각을 넘어 대중들이 그림을 봤을 때도 의학적 내용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끔 전하는데 일러스트의 초점을 맞춘다”고 말했다.
전시회, ‘의학’과 ‘대중’ 사이 다리놓기
2011년 윤 동문은 그간 공들여 온 작품을 모아 ‘해부학과 예술’이라는 주제의 이색적인 전시회를 개최했다. 인체의 섬세한 근육, 신경과 뼈의 그림과 조각 작품들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전시회에는 인체 부위 그림, 고흐(Vincent van Gogh)의 자화상과 이재(李縡)의 초상화를 겹쳐 동∙서양인의 얼굴 골격을 비교하는 작품, 뭉크(Edvard Munch)의 ‘절규’처럼 잘 알려진 서양 명화 작품을 해부학적 지식으로 재해석한 작품, 그리고 근육과 신경에 담긴 생명 서사를 큰 나무의 잔 뿌리와 비교한 작품을 선보였다. 전시 작품은 윤 동문이 운영하는 웹사이트 메드아트에 개재됐다. 이 밖에 <다빈치 아카데미> 참가자들도 그림을 전시했다. <다빈치 아카데미>는 미술에 필요한 해부학적 지식과 새로운 창작의 소재를 제공하기 위해 윤관현 동문이 대표인 ‘메드아트’와 연세대학교 치과대학이 주최한 해부학 체험 프로그램이다.
윤 동문은 “현실적으로 메디컬 일러스트라는 분야는 아직까지 대중들에게 생소한 분야”라며 “메디컬 일러스트 홍보가 전시회의 의도였다”고 말했다. 이어 윤 동문은 “전시회를 통해 인체에 대한 지식을 어린이들에게도 쉽게 전할 수 있어서 뿌듯했다”며 “미래의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를 양성하는데 도움이 될 시간이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전문성’ 갖춘 일러스트레이터가 필요하다
한국은 메디컬 일러스트의 태동기를 지나고 있다. 연구의 질을 높여야 하는 의학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메디컬 일러스트에 대한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더 이상 연구 지원자, 조력자가 아닌 동등한 연구 파트너로 인식되는 것이다. 또한 인체보조기구 제작, 의학 관련 E-Book 콘텐츠 제작 등 메디컬 일러스트가 활용될 수 있는 부분은 무궁무진하다.
윤관현 동문은 “점점 전문화하는 메디컬 일러스트의 발전을 위해 서양의 방법을 참고해야 한다”며 “서양은 이미 의학 분야 별로 일러스트레이터들이 나뉘어 전문성이 아주 뛰어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만약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를 지망하는 학생들이 있다면 쉽지 않겠지만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며 “자신의 길에 대한 확신을 갖고 열정과 함께 나아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학력 및 약력
윤관현 동문(해부학박사.12)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및 미술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교실을 거쳤다. 이후 우리대학 의과대학 해부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해부학 겸임교수,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구강생물학교실 해부학 겸임교수, 메드아트(Medart) 대표, 대한해부학회원, 대한체질인류학회원, 한국미술협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최슬옹 학생기자
- kjkj3468@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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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보민 사진기자
- marie91@hanyang.ac.kr
- 2014-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