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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名醫)의 길
조회 5833 2016-02-18 05:29:20

“항상 환자 분들께 죄송한 마음입니다. 오랫동안 기다리셨을 텐데, 진료시간이 상대적으로 짧아 송구스럽죠” 우리대학 류마티스 병원장 배상철 교수(의대·류마티스)는 연신 환자들에게 애틋함을 전했다. 매일 100명이 넘는 환자를 진료할 만큼 강행군이지만, 대기순번이 1년 여 밀려있어 배 교수는 늘 환자들에게 미안하다. 국내 최고라는 그의 명성 덕분에, 우리대학 류마티스병원은 전국에서 몰려든 환자들로 늘 북적인다.

배 교수는 언제나 ‘환자중심’이다. 해외출장을 나가서도 업무를 마치면, 즉시 귀국길에 올라 바로 다음날 진료를 할 정도다. 그의 진료철학은 확고하다. “환자에 따라 어떤 치료 방법을 쓸지 결정하는데, 필요한 시간이 각각 다릅니다. 확신이 들면 그 자리에서 바로 결정을 내리지만, 검토가 필요한 환자는 몇 날 며칠을 분석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환자와 제가)서로를 믿고 진료에 임하면 분명 좋아질 수 있습니다.” 류마티스 치료의 개척자이자, 환자들에게 사랑 받는 명의(名醫) 배 교수를 인터넷한양이 함께했다.

“부담되더라도 환자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되는 치료할 것“

배 교수는 명의(名醫)로 통한다. 한·미자랑스런의사상, 지석영의학상, 대한류마티스학회 학술상 등 웬만한 의학상은 다 휩쓸었다. 루푸스 분야 세계적 전문가 모임 인슬릭(SLICC)의 유일한 동양인이기도 하다. 류마티스 의사로 성공한 그지만, 사실 그는 학부시절엔 심장내과 전공생이었다. “당시만 해도 류마티스 질환은 일반 대중은 물론이고 의학계에서도 주목하지 않던 불모지였죠. 어느 날 선배가 류마티스 내과를 권유하길래, 일주일 동안 엄청나게 고민했습니다.” 선택의 기로에 선 그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되새겼다.“ ’가지 않은 길’이라는 말을 마음에 담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많은 이들이 걷고 있는 길 대신 남들이 선택하지 않았던 길을 가기로 한 거죠. 제가 아주 도전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류마티스는 개척할 분야가 많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의 류마티스 의사 면허번호는 12번. 국내 12번째로 류마티스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는 의미다. 실제로 그는 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법을 적용하기로 유명하다. 류마티스 치료 분야의 ‘개척자’인 셈. 지난 2002년, 골수이식과 약물요법을 병행한 치료법으로 중태에 빠진 20대 여성 루푸스(전신홍반성난창)환자를 살려낸 일화는 환자들 사이에서 여전히 회자되는 극적인 사례다. 이처럼 공격적 진료 방식인 신(新)치료법을 강하게 주장하는 이유는 왜일까. “류마티스 환자들 중에도 생사의 갈림길에 선 중환자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특히 저희 류마티스 병원은 4차 전문 병원이기 때문에 다른 곳에선 손을 쓸 수가 없어 찾아오는 환자들이 적지 않아요. 절망에 빠진 환자들에게 ‘마지막 희망’인 셈이죠. 얼마나 간절한지 알기에 능력이 되는 한, 할 수 있는 건 다 하는 겁니다. 물론 쉽지는 않죠. 중환자를 신치료법으로 접근하다 보면, 그만큼 부담도 있고 가벼운 증상의 환자 20명 보는 것만큼이나 시간과 노력이 들어갑니다. 그러나 저는 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해 (완치가 아닌 현상 유지가 목표인) 쉽게 가는 진료를 하고 싶진 않아요. 저를 찾는 환자들에게 큰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대학 류마티스 병원, 난치치료와 예방치료의 대명사

배 교수가 병원장을 맡고 있는 우리대학 류마티스 병원엔 그의 지향점인 ‘환자 중심’, ‘난치 치료’ 철학이 고스란히 스며있다. 1989년에 개설된 ‘류마티스 센터’을 시작으로, 1998년에 탄생한 국내 최초의 류마티스 전문병원은 진료, 연구, 행정이라는 삼박자 균형을 맞춘 점이 경쟁력이다. “우리 병원을 예방 치료와 난치 치료의 대명사로 키울 계획입니다. 구체적으로는 각각 류마티스 고위험군에 속한 잠재적 환자들을 발병 전에 미리 관리하거나, 여타 병원에서 해결책을 제시 못한 환자를 줄기세포 등으로 치료하는 거죠.”

최근 배 교수는 논문 대표 저자로 류마티스 최고 학술지에 이름을 실었다. 루푸스 발병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 아이캠1(ICAM1)을 규명해낸 것. 다국적 프로젝트 팀과 함께 연구를 진행한 터라 의미가 더욱 크다. 학계에선 이번 성과에 대해 루프스 치료가 진일보할 수 있는 쾌거라는 평을 내놨다. “이번 연구는 힘든 편이었어요. 외국인 연구자들과 문화차이가 생각보다 많았거든요. 하지만 대표 연구자로서 연구 외적인 부분에서 필요한 구성원 간에 조율을 배웠습니다.” 이 뿐만이 아니다. 그와 연구팀은 흡연을 하면 류마티스 질환 발병률이 최대 15배까지 높아진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저는 20년 전에 금연했어요. 환자들에게 담배 끊으시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덩달아 연구결과도 환자들이 금연하는데 힘을 실어주고 있죠.”

매일 눈코 뜰새 없이 바쁘지만, 그는 늘 굵직굵직한 연구 성과물을 내놔 학계와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1996년 미국에서 전임연구원으로 있을 때, 제 이니셜로 검색해보니 SCI논문이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웃음). 처음에는 논문 한 편 쓰는 것이 너무 힘들었어요. 그러다 2005년 즈음부터 SCI논문이 수월하게 나오더군요. 개인적으로 연구 인프라는 50대 이전에 만들어놔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까지는 그걸 구축하는데 혼신의 힘을 다해왔어요. 이젠 논문의 질을 높여서 1, 2년 내에 최고등급 학술지에 제가 대표 저자로 집필한 논문을 싣는 게 목표입니다.”

진료를 위한 엄격한 자기관리, “무미건조할 때도 있지만 환자들 보면 보람차”

흔히들 의사가 잡아야 할 두 마리 토끼는 환자 진료와 학술 연구라고 한다. 동료의사들은 배 교수처럼 병동과 책상에서 모두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주는 일이 쉽지 않다며 혀를 내두른다. 비결이 뭘까.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진 5시 50분, 금요일 5시 40분. 주말엔 6시 50분에 일어납니다. 아침에 기상하면 꼭 10분씩 영어공부부터 챙겨서 하고, 출근시간은 7시를 넘지 않는 게 제 원칙입니다.” 그는 철저한 자기관리가 자신 뿐 아니라 환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체력이 강한 편이 아니라, 규칙적인 생활을 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맑은 정신에 환자를 봐야 하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열심히 사는 거죠. 술도 다음날 진료가 가 있어 피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는 솔직한 사람이었다. 단순히 ‘운이 좋았다’식의 어설픈 겸양 대신에, 현재 최고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음을 인정했다. “회의감이 들 때가 있죠. 평일엔 환자를 보고, 진료가 없는 날은 연구미팅하고 논문을 수정하는 생활이 이어지거든요. 근데 이렇게 하지 않으면, 세계 최고 수준을 맞춰갈 수 없어요. 무미건조하고 빡빡한 일상임을 알고 있지만, 우선순위를 정해서 살려고 합니다.” 엄격하리만큼 철저하게 자기관리를 하는 동기부여가 궁금했다. “별다른 것 보다는 그냥 인생 한 번 사는데 이왕이면 보람된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고 싶은 거 다하고 살 수는 없으니까요”

처음부터 의사라는 일에 모든 것을 맞춘 삶을 산 건 아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학부생 시절엔 다양한 분야에서 참 많은 경험을 해봤다고 한다. “공부할 때는 착실했지만 성격이 사교적이라 친구들과 할 건 다했습니다. 노는 방향으로도 여러 군데 친구들을 입문시켜주곤 했죠(웃음).” 천성적으로 사람과 어울리기를 좋아한다는 그는 지금도 환자들에게 ‘내 말 귀담아 잘 들어주는 의사’로 통한다. 우리대학 홍성태 교수(경영대·경영)가 수업시간에 ‘공감의 힘’을 설명하며 배 교수를 모범사례로 들 정도다. “치료의 절반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와 환자가 ‘통하면’ 치료 경과가 확연히 좋아지거든요. 사실 환자에게 반복해서 같은 얘기를 하다 보면 지치고 힘들 때가 있어요. 항상 자기수양이 필요합니다(웃음). 매일 저녁 10분간 기도를 빠뜨리지 않습니다. 눈을 감고 ‘오늘 내가 환자를 대하면서 부족함은 없었나’하면서 돌이켜보면 부끄러울 때가 많아요. 매번 반성하고 좀 더 나아지려고 합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의사의 진정한 길을 묻다

의사 가운을 벗은 ‘인간 배상철’은 어떤 모습일까. 그는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해 가족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이 있다고 했다. 특히 노모를 모시고 진료 받으러 온 아들을 볼 때면 자신도 어머니 생각이 난다고. 그러나 개인적인 인생 목표를 묻는 질문에도 이내 병원을 언급하며 천상 어쩔 수 없는 의사임을 드러냈다. "우선 우리 병원이 현재 국내 최고 수준에서 나아가 글로벌 리딩 전문병원으로 자리매김 하기를 바랍니다. 또 개인적으로 사람은 10년을 주기로 변신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러 구성원들과 소통하면서 후배 교수님들이 저를 뛰어 넘을 수 있게 돕고, 넘겨줄 것은 넘기면서 저만이 할 수 있는 조금 다른 형태의 일을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근 몇 십 년간 머릿속에 있는 걸 꺼내 쓰기만 했거든요. 이제는 채워 넣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어요."

진정한 명의는 실력과 동시에 따뜻한 마음씨도 두루 갖춰야 한다는 배 교수. 하지만 정작 본인은 ‘류마티스 질환 명의=배상철’이라는 등식에 대해 한참 멀었다며 손사래를 쳤다. “진인사대천명, 참 진부한 말이지만 제 좌우명입니다. 할 수 있는 노력은 다해보고, 결과는 겸허히 기다리는 거죠.” 그는 후배들에게 젊을 때 자신이 어떻게 살 것인지 근본적으로 고민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본인의 시비를 써보는 걸 권하고 싶어요. 남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글을 쓰다 보면, 무엇이 얼마나 부족한지 알게 될 겁니다. 이력서를 적으면서 생각이 정리 되는거죠. 자신의 생각을 잘 곱씹다 보면 가야 할 길이 보이지 않을까요? 이런 진지한 고민을 빨리 시작했으면 좋겠네요. 어떤 일이든 진심이 담기면 보람된 일이 될 거라고 전하고 싶습니다.”

학력 및 약력

배상철 교수(의학.78)은 우리대학 의과대학에 입학하여 88년 석사, 93년 박사과정까지 우리대학에서 마쳤다. 1996년 미국 유학 길에 오른 그는 하버드 의대(Harvard Medical School)에서 전임연구원 및 전임강사로 있으면서 MPH(공중보건학)학위를 취득했다. 국내 최고의 류마티스 권위자로 알려진 그답게 대한류마티스학술상, 한미자랑스런의사상, 지석영의학상, 한양대최우수교수상 등을 수상했다. 지난 2005년부터 병원장으로서 우리대학 류마티스 병원을 이끌고 있으며, ‘배준비’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 철저한 자기관리로 실력과 인품을 두루 갖춘 명의의 길을 걷고 있다.







김철웅 학생기자
chulwoong7@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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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진 사진기자
flowkj@hanyang.ac.kr

 

2013-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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