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개회식 , 전 세계인들의 관심 속에 마지막 성화 점화자로 낙점된 한 남성이 양손을 떨며 성화 점화를 했다. 그는 바로 1960년 로마 올림픽 복싱 챔피언이자,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라는 명언을 남긴 복싱계의 살아있는 전설 무하마드 알리. 링 위의 수많은 복서들을 제압하고 챔피언 의 자리에 올랐던 그를 떨게 한 것은 무엇인가. 다름 아닌 ‘파킨슨병’이다. 파킨슨병은 치매, 중풍과 함께 3대 노인성 질환으로 꼽힌다. 아직 병의 진행을 멈추게 하는 뚜렷한 방법이 없어 많은 연구자들이 파킨슨병 치료에 매달리고 있다. 이 와중에 얼마 전 우리대학 이상훈 교수(의 대·의학)가 환자맞춤형 파킨슨병 치료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연구에 성공했다는 기쁜 소식을 전 해줬다. 오랜 연구 끝에 값진 결과물을 얻은 이 교수를 인터넷한양이 만나봤다.
생물학 실험은 살아있는 생물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피실험체를 키우고 실험하는 것까지 기본적으로 3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이번 연구 역시 결과물을 내기까지 3년이 넘는 긴 시간이 걸렸다. 많은 땀과 노력이 투입된 만큼 이번 성과에 대한 이 교수의 기쁨이 클 법하다.
“그동안 우리대학 의과대학에서 실험실을 운영하면서 파킨슨병 치료에 관한 수많은 연구 성과를 논문으로 발표했지만, 이번에 나온 성과는 그 연구 내용의 의미나 출간된 논문의 수준으로 보아 가장 뜻이 깊다고 볼 수 있어요. 처음 논문이 인정(accept)됐다는 편지를 받았을 때의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죠. 모든 일과를 접고 잠실 선착장으로 달려가서 커피 한 잔에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흥분된 마음을 달래야 했습니다. 새로운 연구결과를 도출해야 한다는 중압감으로 가끔 연구를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바로 이런 연구 성과 후 누리는 기쁨이 과학을 하는 원동력인 것 같습니다. 단순히 업적을 인정받았다는 것도 기쁘지만, 지원 받은 연구비에 대해 책임을 다할 수 있게 된 것에 뿌듯함을 느껴요. 이번 성과를 통해 여러 부분에서 긍정적 효과도 기대할 수 있게 됐어요. 수준 높은 학술지에 논문이 실리면서 언론에 나오고 외국에도 초청도 받았죠. 또한 이번 논문을 통해 우리 학생들도 과학 전문 사이트 브릭(Bric)에 소개도 되고 앞으로 장래에 매우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겁니다. 논문이 학생들이 앞으로 좋은 자리를 잡는데 제일 중요한 요소이거 든요. 이런 것들을 통해 우리 실험실이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거예요. 이곳에 좋은 학생들이 많이 들어오고 훌륭한 인재들도 배출될 가능성이 커진 거죠.”
파킨슨병의 주요 증상은 가만히 있어도 손을 비롯한 신체 부위의 떨림 현상이 나타나고, 신체가 전체적으로 경직되며 움직임이 느려지는 것이다. 안정된 자세를 유지하기 어려울 뿐더러 일상생활에도 지장을 받게 된다. 병의 원인은 뇌에서 분비되는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과 관련이 있다.
“파킨슨병은 뇌에 도파민 신경세포가 파괴돼서 생기는 병이에요. 부족해진 도파민으로 인해 뇌의 운동회로가 망가지면서 각종 파킨슨병 증상을 유발하는 것이죠. 아직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어요. 가능성이 제시된 치료방법은 백혈병 환자에게 골수이식하는 것과 같은 개념이죠. 우리 몸은 세포가 없어지면 복구를 잘 못해요. 그래서 외부에서 세포를 이식함으로써 치료하는 거죠. 백혈병은 골수에 있는 혈액줄기 세포가 비정상적으로 된 것인데, 치료를 위해 이 비정상적인 혈액줄기세포를 없애고 건강한 줄기세포를 혈액 속에 집어넣어 치료하는 방법이에요. 이러한 개념을 파킨슨병 치료에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 오래 전부터 증명됐죠. 바로 파킨슨병 환자의 뇌에는 도파민 신경세포가 파괴되어 없어졌으므로 외부에서 건강한 도파민신경세포 또는 도파민신경세포를 생성할 수 있는 전구세포 (줄기세포)를 집어넣어 주는 거죠. 처음에는 죽은 태아의 뇌에서 도파민전구세포를 분리하여 직접 이식하여 주는 시술을 하였죠. 효과가 있긴 하지만, 죽은 태아를 얻기가 힘들뿐 아니라 한 환자 치료에 다섯 이상의 태아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방법이었죠.”
“이런 문제점 때문에 저희 실험실에서는 줄기세포를 분리. 배양을 통해 다량의 줄기세포를 확보하고 도파민신경세포로 효율적으로 분화케 하여 여러 파킨슨환자에게 이식할 수 있을 만큼 많은 도파민신경세포를 획득하는 연구를 해왔습니다. 그리고 배양된 줄기세포를 파킨슨병 모델 동물에 이식하여 그 치료효과도 보았지만, 줄기세포 이식치료에서 궁극적으로 부딪히는 문제는 동물이나 다른 사람의 세포보다는 환자 자신에게서 유래된 세포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환자 자신에게서 유래된 줄기세포로 세포 이식하는 치료를 환자 맞춤형 세포 치료라고 하지요. 아마 황우석 박사님 사건을 통해 환자맞춤형 줄기세포에 대해서는 많이 친숙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결국 황우석 박사님의 환자맞춤형 줄기세포는 가짜로 판명되었고 2007년에 일본그룹에 의해 조직세포에 4개의 역분화 유도 인자를 바이러스를 이용해 도입하여 만든 역분화유도만능줄기세포(iPS cells)가 탄생되게 되었습니다. 즉 파킨슨 환자의 피부 등 조직 세포로 역분화만능줄기세포를 만들고 이를 도파민신경세포로 분화시켜 환자 뇌에 이식하는 것이 환자맞춤형 세포이식 치료에요. 저희가 이번 연구를 통해 이와 같은 역분화만능줄기세포를 이용하는 환자맞춤형 세포 이식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을 파킨슨병 동물 모델을 이용해 실험적으로 증명해 보여준 거지요.”
이 교수는 이번 연구에서 하버드대 의대 김광수 교수팀과 합동연구를 진행했다. 김 교수팀은 바이러스를 사용하지 않고 단백질을 이용한 줄기세포를 개발했었다. 이 교수는 연구에 이 줄기세포를 사용함으로써 더 안전한 실험결과를 유도할 수 있게 됐다.
“이번 연구는 특히 바이러스를 사용하지 않고 역분화유도 단백질을 직접 도입하여 제조된, 보다 안전한 인간 역분화만능줄기세포로 파킨슨병 치료효과를 증명하였다는 점에 더 의의가 있습니다. 기술적으로 역분화유도 인자를 조직 세포에 도입하여 발현하게 하려면 일반적으로 바이러스를 사용해야 해요. 알다시피 바이러스는 우리 몸에 안 좋아요. 바이러스 유전자가 세포 염색체에 마구잡이로 끼어들어 가서 예측할 수 없는 세포기능의 이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 문제지요. 이번 연구에서 공동연구 파트너였던 하버드 의대 김광수 박사님은 세계 최초로 바이러스를 사용하지 않고 역분화유도 인자 단백질로만 인간 역분화만능줄기세포를 확립하신 재미한국과학자에요. 저희가 공동연구를 제안하였고 김 박사님이 수락하셔서 이번 성과를 얻게 되었습니다.”
‘줄기세포 연구’하면 ‘생명 윤리’와 같은 윤리적 논란이 항상 따라붙는다. 거기에 과거 황우석 박사 사건 등이 겹쳐 줄기 세포는 연구 자체뿐만 아니라 그 성과를 대외적으로 인정받기도 어려운 현실에 처해있다. 그럼에도 이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를 세계적인 임상저널 학회지인 ‘Journal of Clinical Investigation’에 싣는 쾌거를 거뒀다.
“사실 국내에서 줄기세포로 논문을 내는 것이 쉽지 않아요. 예전에 벌어진 황우석 박사 사건이나 그 이후 있었던 여러 논문 논란 등으로 한국의 신뢰도가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죠. 당시 한 개인의 잘못으로 끝날 수도 있었지만, 워낙 이목이 집중됐고 국가적으로 크게 논란이 됐던 터라 국가 전체의 신뢰도가 낮아진 셈이죠. 게다가 미국이 모든 연구를 주도하다보니 제 3국에서 보내지는 논문이 받아들여지기 힘든 부분도 있어요. 이번 연구가 실린 ‘JCI’지는 유전적, 분자생물학적, 세포생물학적 연구를 토대로 인체생물학 및 질병에 관한 최고 수준의 논문들을 출판하는 잡지에요. 학회지의 수준을 평가하는 ‘Impact Factor’가 15점이 넘죠.”
이 교수는 연구 성공이라는 희소식에 이어 상금 기부라는 훈훈한 이야기까지 전해줬다. 지난 5월 생화학분자생물학회에서 동 헌 생화학상을 수상한 이 교수는 받은 상금 1천만 원을 우리대학 의생명공학전문대학원에 기부했다.
“동헌 생화학상은 생화학 및 그 응용분야에서 창의적 연구업적을 쌓아 학문발전에 공헌한 회원에게 주는 상이에요. 저는 98 년부터 현재까지 줄기세포를 이용한 파킨슨병 치료 연구의 업적이 우수하다고 인정받아 받게 됐어요. 상금으로 2천만 원을 받았는데 일부를 학생들을 지원하는 데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기부를 하게 됐어요. 그리고 이왕 하는 거라면 제가 속한 의생명공학전문대학원이 좋겠다고 생각한 거죠.”
이 교수는 우리대학, 더 나아가 우리나라의 생명과학이 발전하려면 사회적 환경 개선과 학교의 노력, 학생들의 도전의식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생명과학은 가장 최첨단의 연구에요. 최초로 무언가를 발견하고 개발하죠. 이런 연구는 최고의 두뇌를 가진 인재들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미국 같은 곳은 전 세계에서 인재들이 모여들어요. 반면, 우리나라는 공부 잘하면 다 의사나 판검사가 되려고 해요. 세계의 과학을 이끌어가려면 정말 머리 좋은 사람들이 필요한데, 요새 젊은 사람들은 도전의식이나 꿈을 금전적인 부분에만 관련해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다보니 이쪽 분야를 학생들이 잘 안하려고 해요. 물론, 상대적으로 사회적 처우가 좋지 않고 부모들의 의견이 개입되는 것도 크게 작용하죠. 하지만 편리함이나 금전적 이유 때문에 자신의 꿈을 접지 말고 목표를 향해 달려갔으면 해요. 그리고 학교 내부에 바이올로지, 생명과학 연구에 대한 이해가 충분히 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사실 우리대학의 생명과학이 다른 곳에 비해 월등히 뛰어난 수준은 아니에요. 최근에 의생명 연구원을 조직해서 팀 단위로 연구를 하고 있는데, 생명과학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지원해 준다면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겁니다. ”
이번 연구 성과가 각종 언론에 보도되면서 이 교수는 많은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물론 축하전화도 있었지만, 파킨슨병 완치가 가능하냐는 전화도 상당수 있었다. 이 교수는 이제 걸음마 단계라며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지금도 수많은 연구를 진행 중인 이 교수는 항상 더 나은 결과를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번 실험은 쥐를 통해 연구 결과가 입증된 수준이에요. 아직 환자를 직접 치료할 수준이 아니고, 아직도 갈 길이 멀어요. 줄기세포를 이식하면 암이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도 아직 존재하죠. 앞으로 암 발생을 막는 방책을 마련해야 해요. 단백질을 도입하여 만든 역분화줄기세포로 실험을 했고 이 세포가 가장 유망한 세포라 생각하지만, 이 세포를 만드는 것이 매우 힘들어요. 단백질 유도 역분화 줄기세포를 만드는 방법이 개선되어 실질적으로 어려움 없이 환자한테서 세포를 뽑아 원활히 줄기세포를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외에도 파킨슨병 치료 현실화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아요.”
“현재 진행 중인 일이 10개 이상 되는데 학생들, 연구원들과 같이 하고 있어요. 저 혼자만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해야 하죠. 그 이유로 첫째는 이 분야를 공부하는 학생들의 장래를 위해서고, 두 번째는 국가에서 연구비 지원과 같은 혜택을 받았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책임 때문에라도 열심히 해야 해요. 앞으로도 좋은 논문 낼 수 있도록 노력할 겁니다.”
* 도파민 신경세포 : 중뇌 도파민 신경 세포는 신경전달 물질인 도파민을 생성해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이를 통해 운동, 감정, reward 등의 주요 뇌기능을 조절한다. 비정상적인 중뇌 도파민 신경 세포의 조절이나 사멸은 파킨슨병, 정신분열증, 약물중독 등의 중요한 신경계 이상을 초래한다. 따라서 중뇌 도파민 신경 세포 발생의 조절 기작을 이해하는 것은 이러한 신경질환들을 위해 새로운 치료 방법을 고안해 내는 데 필수적이다.
* 역분화 만능 줄기세포 : 생체 시계를 거꾸로 돌려 성인의 세포를 원시 세포인 유사배아줄기세포 상태로 만드는 것을 역분화라 하고, 이렇게 만들어진 줄기세포를 역분화 유도 만능 줄기세포(induced plenipotent stem cells; iPS cells)라고 한다. 보통 역분화를 일으키는 유전자 4개를 바이러스에 넣은 후 이 바이러스를 성체 세포에 감염시켜 역분화 세포를 만든다. 그런데 유전자 대신 그 유전자 산물인 단백질을 직접 세포에 도입해, 보다 안전하게 역분화 줄기세포를 만들기도 한다.
* Impact Factor : 특정 잡지에 실린 한 편의 논문이 어느 특정년도나 특정기간 동안 인용된 빈도수의 척도로써, 그 논문이 실린 잡지의 수준을 평가하는 잣대로 활용된다. 우리대학에서는 10점 이상의 학술지에 논문을 싣는 연구팀에 일정액의 연구비를 지원한다.
- 조성현학생기자
- ggangjsh@hanyang.ac.kr
학력 및 약력
1987년 우리대학 의과대학 의학과를 졸업한 이 교수는 동 대학원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박사학위 취득 후 우리대학에서 교수생활을 시작한 이 교수는 현재 의과대학 생화학 ·분자생물학 교실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8년부터 줄기세포행동제어연구센터 센터장을 맡고 있다.
2011-0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