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 그것은 기계가 제 아무리 정교하고 복잡하다 해도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어떤 것, 무어라 이름 붙이기조차 어려운 어떤 작은 것이에요. 핀처는 그것을 동기라고 불렀지요” 베르베르 베르나르의 소설 ‘뇌’의 한 구절이다. 작가는 동기를 끊임없이 제공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뇌라고 정의한다. 뇌는 인간의 중추신경 중 가장 고차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그렇기 때문에 두개골로 단단히 보호돼 있다. 단단한 껍데기 속의 뇌를 매일 마주하는 이가 있다. 주인공은 본교 구리병원의 김재민(의대·의학) 교수다. 최근 국제 뇌혈관수술학회에서 최우수 구연상을 수상한 김 교수를 위클리한양이 만났다. “뇌를 다루다 = 인간을 다루다” 지난 11월 김 교수는 국제 뇌혈관수술학회에서 최우수 구연상(Young Neurosurgeons Award)을 수상했다. 수상논문은 지난 8월 국제 저명학술지를 통해 발표한 ‘두개골 바닥에 붙어 있어 수술이 어려운 저위 내경-후교통동맥부 뇌동맥류 수술을 비교적 간단한 방법을 통해 쉽게 수술할 수 있는 방법’으로 뇌혈관 수술에서 매우 영향력있는 수술방법을 소개한 논문이다. 김 교수는 인터뷰 직전까지도 메스를 잡고 있었다. 7시간에 이른 대 수술이었다. “방금 수술을 마친 환자는 뇌동맥류였습니다. 뇌동맥류는 뇌의 바닥인 뇌기저 부분의 혈관벽이 부풀어 올라 새로운 혈관 내 공간을 형성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요새는 대부분 이런 수술을 잘 안하려고 합니다. 뇌의 기저 부분을 수술해야 하기 때문에 수술 자체도 어렵고 매우 위험하기도 합니다. 뇌 수술은 어느 하나 쉬운 수술이 없습니다. 제가 신경외과를 전공한 이유이기도 하죠.” 간에 이상이 생기면 잘라낼 수 있고, 심장에 이상이 생기면 인공심장으로 대신할 수 있다. 하지만 뇌는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다. 사랑에 빠지는 것도, 이별로 가슴 아픈 것도 심장이 아닌 뇌가 움직이는게 아닐까? “제 전공은 뇌혈관, 뇌기저부 수술입니다. 즉 종양이나 동맥류 등의 질환을 주로 치료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순간의 실수로 사람의 생명이 움직이는 일이라 매 수술 최선을 안다할 수가 없어요. 수술을 자꾸 하다보면 오히려 내 수명이 단축되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최근 많은 의대학생들이 성형외과나 피부과 등을 선호한다. 이에 반해 외과 지원율은 갈수록 떨어지는 추세다. 정부도 외과 수가 인상 등 전공 기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해마다 외과의 전공의 모집은 미달사태를 빚는다. 김 교수는 이러한 외과 기피현상을 설명하며 쓴 웃음을 지었다. “저는 의대에 진학 한 후부터 외과를 지망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조용하고 정적인 것을 싫어하는 성격입니다. 전공들 중 가장 역동적인 전공이 외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신경외과를 지원 한 것은 인간의 가장 고등기관인 뇌를 본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뇌를 수술한다는 것 자체가 제겐 신비이고 경이적인 일입니다. 저는 학부생일 때 평범한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직접 환자들을 대하면서 많이 활발해졌습니다. 아픈 환자들을 대하다 보면 함께 우울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부터 활발하고 씩씩해야 환자들도 나를 보고 건강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의식조차 없던 환자가 수술 후 두발로 걸어 나가는 모습을 보면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2006년 대장암 진단을 받다 ‘검진이라도 자주 받을걸...’ 암 환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후회다. 김 교수는 지난 2006년 대장암 2기말 진단을 받았다. ‘중이 제 머리 못 깍는다’는 말처럼 그는 의사이면서도 자신에게는 무심했다. 암 진단 한달 전부터 변비와 설사가 잦았지만 암이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었다고 김 교수는 그 당시를 회상했다. “완치라고 얘기할 단계는 아니지만 4년 동안 별다른 증상이 나타나진 않고 있습니다. 당시 수술도 받고 항암치료도 6개월 정도 받았습니다. 평소 워낙 육식과 술을 즐겼습니다. 게다가 뇌질환 특성상 응급환자가 많기 때문에 새벽에도 병원을 떠나질 못했죠. 여러 가지 면에서 육체적으로 지친상태였습니다. 한창 의사로써 활동해야할 시기에 몸에 이상이 생겨 심적으로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수술실에 들어갈 수 있을 거라 굳게 믿었습니다. 환자가 아닌 의사로써 말이죠. 긍정적인 생각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건강을 되찾은 것 같습니다. 항암치료를 받을 당시에도 진료와 수술을 했습니다. 저를 찾아오는 환자들이 있는데 마냥 누워만 있을 수는 없었어요.” 남이 가지 않는 곳에 길이 있다 김 교수는 대한 신경외과학회로부터 이헌재 학술상을 수상했다. 뇌혈관 부분 최우수 논문상인 이헌재 학술상이 그에겐 벌써 두 번째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김 교수는 그 능력을 인정받았다. 국제 뇌혈관 수술학회로부터 수상한 최우수 구연상이 이를 말해준다. 김 교수를 지금의 위치에 있게 한 성공비결을 물었다. “특별한 방법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지만 누구나 하지 못하는 것이죠. 바로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환자 한명 한명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부수적인 것들은 따라오는 것입니다. 다만 약간의 비결이 있다면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렵다고 기피하는 분야에서 묵묵히 일하다 보면 주위에서 인정도 해주고 스스로도 만족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 뇌혈관 분야는 일본과 미국이 독보적인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그 바로 다음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국내 뇌혈관 수술분야가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인재는 필수적이다. 훌륭한 인재를 만드는 것은 훌륭한 선생이다. “지금은 제가 맡은 수술에 최선을 다하고 한 명의 환자라도 더 구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하지만 체력이나 나이가 더 이상 허락지 않는 순간이 오겠죠. 그래서 같은 길을 가는 후학과 젊은 전공의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길을 닦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 어렸을 적 꿈은 교단에 서는 것이었습니다. 미래를 내다본다면 교수들이 자신이 쌓아온 것들을 후학들에게 전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교수들이 보다 개방적인 마음가짐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전공 사람들과 교류를 많이 하고 생각도 많이 공유해야 합니다. 또 학교와 병원, 선배와 후배, 동료 의사들 간 원활한 의사소통이 돼야 합니다. 이는 병원 뿐 만 아니라 어느 집단에서도 필수적인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직전까지 장시간 수술로 바쁜 시간을 보낸 김 교수가 마지막으로 겨울철 뇌질환 예방을 위한 비결을 들려줬다. “우리나라의 뇌질환 사망률은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특히 뇌질환은 겨울철에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갑작스레 찬 곳에 노출될 경우 뇌경색이 올 위험이 있다. 새벽운동이 무조건 좋다고 생각하지만 겨울철에는 오히려 건강을 위협할 수도 있습니다. 해가 뜬 후 온도가 조금 높아졌을 때 운동할 것을 추천합니다. 또 뇌혈관 수술을 하다보면 뇌를 직접 보게 됩니다. 그런데 흡연자의 혈관에는 동맥경화가 비흡연자에 비해 굉장히 많이 발견됩니다. 이를 계속 보다보니 더 이상 좋아하던 담배를 입에 물 수 없게 됐습니다. 내년에는 많은 사람들이 금연을 목표로 했으면 좋겠습니다.” | |
글 : 송재진 학생기자 ssongok@hanyang.ac.kr 사진 : 장지은 학생기자 ptjje@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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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