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톰슨사이언티픽(Thomson Scientific)사(社)가 과학기술분야 학술잡지에 게재된 논문의 색인을 수록한 자료의 모음을 뜻하는 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이하 SCI). 이 기관은 해마다 학술적 기여도가 높은 학술지를 엄선해, 여기에 수록된 논문의 인용정보를 체계화한 후 수요자에게 공급하고 있다. 따라서 SCI 등록 여부는 이미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학술지의 평가 기준이 된지 오래다. SCI 인용 정도에 따라 과학논문의 질을 평가하는 것이다. 나아가 SCI에 수록된 논문의 인용도는 국가 및 기관 사이에서 과학기술 연구 수준을 비교하거나 연구비 지원 학위를 인정하는 평가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이처럼 권위 있는 SCI 계열 국제학술지의 하나인 독성화학 학술지(Journal of Applied Toxicology)의 편집위원 가운데 아시아인이 2명 선정돼 화제다. 의과대학 병리학교실 공구(의대·의학) 교수와 일본 후생성 산하 보건연구소장 이노우에 박사가 바로 주인공. 향후 아시아 지역 논문의 학술지 게재 여부를 심사하게 될 공 교수를 찾아가 편집위원 선정에 대한 소감을 비롯해 의사에서 연구자의 길을 걷게 된 계기를 들어봤다. “과학 기술 정책 기반으로 정부 차원의 유해물질 관리 대책 필요해” 의과대학 본관 4층에 위치한 공 교수의 연구실을 찾았다. 그가 속한 ‘병리학(pathology)교실’은 병의 원리를 밝히기 위해 병의 상태나 병체의 조직 구조, 기관 등의 형태를 연구한다. 이곳에서 공 교수는 발암물질이나 미생물에 의한 유해에 대해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암은 어떻게 생기는지, 바이러스가 몸속으로 들어와 어떻게 암을 유발하는지를 밝혀내는 것이 연구의 목적이다. 최근 유전자 기술을 이용해 유해물질 발생을 차단하는 연구에 주력하고 있는 공 교수는 한국 독성학회 학술지 편집간사와 세계보건기구(WHO) 국제 화학물질 안전 프로그램(IPCS) 평가자문위원을 맡으면서 SCI 계열 국제학술지와 인연을 맺게 됐다. “사실 편집위원으로 선정됐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기대하지도 못했으니까요. 아시아에서 2명을 선발했다고 하는데 이제야 조금 실감이 납니다. 편집위원이 되면 임기 3년 동안 SCI 계열 독성화학 학술지(Journal of Applied Toxicology)에서 편집위원 자격으로 아시아 지역에서 올라온 논문을 심사하게 됩니다. 제가 병리학교실에 있으면서 주로 유방암 발암기제에 대한 연구를 해왔고, 유해물질에 의한 유전체를 공부한 것이 선정 배경으로 작용했다고 봅니다. 나아가 식품의약품안전청과 함께 독성유전체 기술을 연구한 공로도 어느 정도 인정된 것으로 보입니다.” 공 교수는 소감을 말한 뒤 독성화학 연구에 대한 중요성과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한 국제적 기준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대표적인 예는 바로 지난 2005년 일어난 김치 기생충 알 파동. 당시 중국산 김치에서 기생충 알이 발견돼 우리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이 사건으로 정작 큰 피해를 입은 것은 국내 김치 생산업자들이었다. 중국산 김치의 절반 이상은 한국 업자들이 중국에서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김치를 비롯한 다양한 식품들이 국경을 넘어 교역대상이 된지 오래다. 문제는 나라마다 토양과 기후 등 환경이 다르다는 것. 이 때문에 수출국에서는 별 문제가 없었던 식품이 수입국에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이는 다시 국가 간 무역마찰로 번질 수 있다. 이 같은 문제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세계 어디서나 공통으로 적용할 수 있는 과학기술 기반 정책(Science Based Policy)이 절실히 필요하다. 공 교수가 연구하는 독성화학 분야 역시 세계 표준을 만들기 위한 과정인 셈이다. “세계화 시대를 맞아 음식 등 식료품의 무역이 활발해졌고, 이에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상대 국가에선 그다지 유해하지 않은 성분이나 물질이 우리나라 국민들에겐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어요. ‘권총’으로 비유를 들어보겠습니다. 권총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모두 압니다. 다만 어렸을 때부터 권총을 보고 자라온 미국 사람들이 느끼는 정도와 권총을 한 번도 만져보지 못한 대다수 우리 국민들이 권총을 접했을 때 느끼는 위험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유해물질 자체는 같더라도 노출 정도에 따라 기준이 달라져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부 차원에서 유해물질을 관리해야 합니다. 상대 국가와 무역마찰을 피하기 위해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한 정책을 세워야 하는 것이죠.” 적극적 사회 참여 및 사회적 책임 다하는 지식인이 시대가 원하는 진정한 지도층 과학 기술 기반 정책에 대해 말하는 공 교수는 이미 유방암 연구로 학계에 잘 알려진 인물이다. 지난 90년 이후 미국 암학회 정회원으로 있는 그는 유방암 연구와 관련해 40편이 넘는 학술보고를 할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보통 의과대학 졸업생이 인턴, 전공의(레지던트) 과정을 수료하고 의사가 되는데 반해 공 교수는 연구자의 길을 택했다. 지난 92년 미국 워싱턴으로 건너가 조지워싱턴대학병원 분자병리과에서 전임의(fellow)로 분자병리학을 공부하게 된 것이 그 시작이다. 사람의 몸에 어떻게 병이 발생하는지 더 깊은 연구를 하고 싶어 유학을 결심한 그는 조지워싱턴대학을 시작으로 버지니아 의과대학병원, 베이러 의대 유방암 센터를 거쳐 지난 2004년에 본교 전임강사로 부임하게 됐다. “사실 어렸을 적 꿈은 정치인이었습니다. 학교 다닐 때도 남 앞에 나서는 것을 즐겼어요. 그래서 법대를 가고 싶었는데 고등학교 2학년 때 이과를 택하면서 자연스럽게 진로가 의대로 바뀌게 됐어요. 지금도 비슷하지만 그 시절에도 공부 좀 잘한다 싶으면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법대, 의대, 치대, 한의대를 권하곤 했습니다. 저는 학사, 석사, 박사과정을 본교에서 보내면서 총 13년 동안 한양대에 머물렀습니다. 오랜 기간 의학을 공부하면서 무엇을 할지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졸업 후, 멋진 의사가 되는 것도 좋지만 ‘사람에게 왜 병이 생기는지’, ‘유해물질이 인체에 침입하면 어떤 유전자가 반응하는지’ 밝혀내고 싶어 병리학을 시작으로 연구원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의대를 졸업하고도 의사라는 고정된 길을 걷지 않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사람들이 있다. 컴퓨터를 치료하는 의사이면서 동시에 성공한 벤처기업인으로 잘 알려진 안철수 씨가 대표적인 사례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존경하는 기업인으로 꼽히는 안 씨는 바이러스 치료의 신기원을 여는 동시에 사회공헌 및 윤리경영을 경영 전면에 내세워 주목받고 있다. 공 교수에게 ‘멋진 의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그는 사회 참여의식을 갖는 의사야말로 진정한 의사라고 설파했다. 많은 지식을 알고 있는 지식인으로는 무언가 부족하다는 것이 공 교수의 설명이다. “우리 사회는 비교적 지식인에 관대한 경향이 있습니다. 가령, 학창시절에도 똑같은 실수를 해도 공부 잘하는 학생에겐 그다지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내가 잘못해도 심하게 꾸중 듣진 않을 것’이란 인식이 이어져 성인이 돼서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지식인 의식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지식인이 사회에 참여할 때 비로소 모든 사람이 행복해진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이는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돈만 벌면 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사회에 기여하는 책임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최근 국내 대기업이 사회봉사에 나서는 등 적극적인 사회 참여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도 바람직한 방향이라 봅니다. 이제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 지식인은 소외받을 수밖에 없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독종(毒種) 공 교수의 조언, ‘독하게 살아라’ 공 교수는 친구들 사이에서 독종으로 통한다. 한 번 마음먹은 일은 밤을 새서라도 마무리하고, 목표한 것을 이루기까지 다른 일은 쳐다보지도 않는 독한 기질을 두고 한 말이다. 사실 공 교수가 처음부터 ‘독한 남자’였던 것은 아니다. 어릴 적부터 크고 작은 수술을 하면서 건강이 좋지 않았고 최근까지도 수술을 하면서 나머지 인생은 덤으로 산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몸에 스며들었다. 그는 제자인 의과대학 학생들에게도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의사가 될 것을 강조한다고 밝혔다. “강의 첫 시간에 항상 학생들에게 ‘독(毒)하게 살아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제 경우 어렸을 때부터 척추 수술을 비롯해 최근 신장이식 수술까지 크고 작은 수술을 여러 차례 받은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마음을 독하게 먹고 무엇이든 열심히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인지 주변에서 친구들이 ‘독종(毒種)’ 이라 부릅니다. 젊은 학생들이 근성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가령, 학생들에게 무엇을 조사해서 알아오라고 시키면 인터넷을 뒤지거나 남의 이야기를 결과물로 내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보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부족한 경우가 많은데 끈질기게 연구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합니다. 나아가 앞서 말한 것처럼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모습까지 보여준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겁니다.” 서울캠퍼스 의과대학 병리학교실 교수로 재직하는 동시에 왕성한 대외활동을 보이고 있는 공 교수. 그는 현재 본교 BT 사업단 분자 생체 지표 연구단장, 대한 병리학회 학술위원을 비롯해 세계보건기구(WHO) 국제 화학물질 안전 프로그램 위해평가 자문위원 등 여러 직책을 겸하고 있다. 다양한 대외 활동을 하는 만큼 에피소드가 많을 터. 공 교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그는 보건복지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세계보건기구 총회에 한국 대표단 자격으로 보건복지부 장관을 수행했을 때 WHO 사무총장이었던 이종욱 박사와 있었던 일화를 조심스럽게 털어놨다. “지난 2005년 세계보건기구(WHO) 총회 당시 한국 대표단 자격으로 보건복지부 장관을 수행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WHO 사무총장이 이종욱 박사였어요. 세계 보건 당국자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김근태 前장관이 영어로 연설할 차례가 됐는데 김 장관이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자 의장석에 앉아있던 이 박사가 “장관님, 괜찮습니다. 긴장하지 마시고 마음 편하게 가지세요”라고 한국말로 격려를 했었죠. 연설이 끝난 후에도 이 박사는 “김 장관님, 아주 잘 하셨습니다”라고 재차 격려했었어요. UN에서 가장 큰 단체인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과 우리나라의 보건복지부 장관이 연단에서 한국말로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았을 때 새삼 국력(國力)을 느꼈습니다. 이후 다시 WHO를 방문할 기회가 생겼지만 이종욱 박사를 만날 수 없었습니다. 얼마 전 뇌출혈로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이죠. 지금도 이 박사를 떠올리면 진한 그리움과 함께 아쉬움이 남습니다.” SCI 계열 국제학술지의 아시아 편집위원으로 선정된 공 교수. 향후 3년 간 아시아 지역 논문 선정에 깊숙이 관여하게 될 그는 지금껏 그랬던 것 같이 앞으로도 뭐든 ‘독종’처럼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했다. 활발한 대외활동만큼 가족에게도 사랑받는 가장(家長)으로 남고 싶다는 공 교수가 그간 배운 병리학 지식을 바탕으로 국가 보건정책에 보탬이 될 수 있는 꾸준한 연구를 계속하길 기대해본다. | |
글 : 정 현 취재팀장 opentaiji@hanyang.ac.kr 사진 : 김기현 사진기자 azure82@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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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