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마티스는 나이가 들면 으레 앓게 마련이고 텔레비전의 광고처럼 파스 한장으로 거뜬히 버틸 수 있는 병쯤으로 생각하기 싶다. 그러나 류마티스는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고루 앓고 있으며 현재의 의학으로는 치료가 안 되는 불치병으로 분류돼 있다. 또한 관절 근육뿐 아니라 피부, 신경, 장기까지 아픈 '루푸스' 질환의 경우 심한 경우 생명도 잃을 수 있는 질환으로 알려져 있다. 환자들과 더불어 난치병과 싸우며 오늘도 1백 여명의 류마티스 환자들의 아픈 곳을 어루만져 주고 있는 류마티스내과 배상철 교수를 찾았을 때는 장마가 한창 기승을 부려 류마티스 환자들을 더욱 괴롭게 할 때였다. "우리 류마티스 병원을 흔히 '4차 병원'이라고 합니다. 1차 개인병원, 2차 준종합병원, 3차 대학·종합병원을 거쳐도 낳지 않을 때 이 곳으로 오게 된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죠. 치료가 잘 되지 않는 병을 연구하며 치료하는 것으로 대학병원의 역할을 찾을 수 있습니다." 훌륭한 진료는 철저한 연구가 뒷받침돼야 배 교수의 학교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진료하는 의사와 연구하는 교수로서의 이중 역할이 결코 만만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진료는 끊임없는 연구를 병행한 진료로서만 가능하다는 평소의 소신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신은 개업의에 대한 욕심이 없냐는 질문에 '솔직히 유혹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털어놓으면서도 대학에 꿋꿋이 남아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루푸스 환자들에게 희망의 전도사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국제적인 교류에도 대학은 적격이라고 말한다. 아시아에서는 유일한 SLICC(세계 루푸스 전문가 모임) 정회원이기도 한 배 교수는 1년에 2번 정도의 정기 모임을 통해 치료방법 공유와 평가를 세계적인 전문가들과 함께 하고 있다. 학사에서 박사까지 전 과정을 본교에서 마친 배 교수는 91년 교수로 부임한 후 96년 미국 하버드(Harvard) 의대 교환교수로 가게 되면서 새로운 학문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회고한다. "미국에 있으면서 주로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것을 주로 했습니다. 그때 느꼈던 것은 우리나라 교수들은 임상연구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환자와 직접 대하면서 병행하는 연구가 상당히 도외시되고 있던 시절이었죠. 제 은사가 Liang 교수인데 연구가 뒷받침되어야 환자를 잘 볼 수 있다는 가르침으로 학문 방향을 많이 바꾸어 주었습니다. 이미 박사과정을 다 마친 상태였지만 다시 대학원을 들어가라는 권유에 임상역학과 경제학을 공부하게 됐죠." 만성질환 치료는 일종의 '예술행위' 배 교수의 주 전공은 류마티스학이지만 연구분야는 유전역학, 임상역학 및 경제학 등으로 다양하다. 3대 질환으로까지 불리는 류마티스는 45세 이상 성인에게 가장 많이 나타나고 명확한 치료법을 현재로서는 알려진 것이 없는 만성질환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DNA 변화를 분석해서 개개인의 특성에 맞는 개별화된 맞춤치료를 연구하고 있다. 또한 치료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정해진 예산으로 효율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임상 경제학 연구도 겸하고 있다. 같은 병에 역시 똑같은 치료를 하더라도 개인의 의지나 주변 환경을 조절해 회복 속도를 빠르게 하는 것도 배 교수가 연구하고 있는 분야이다. "만성질환 치료는 일종의 '아트', 예술행위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치료법을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또한 환자와 따뜻한 마음이 통할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이때 개별화된 치료는 필수적인데 이는 기초과학에 기반한 부단한 연구가 필수적이죠. 다각적인 측면에서 환자의 상황을 분석한 후에 비로소 예술적인 치료가 가능합니다. 이를 위해 영양학, 생화학, 경제학, 의료관리학, 간호학 등의 학문과의 접목을 꾀하고 있습니다. " 옷으로 치면 기성복 보다 체형의 정확한 측정과 좋은 소재의 선택 그리고 재단사의 맵시있는 가공이 뒷받침된 맞춤복이 좋듯이 환자들에게 '맞춤치료'를 제공하기 위한 배 교수의 행동 반경에는 늘 통계와 유전학, 간호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있다. 꼼꼼히 작성된 진료 리스트를 분석하는 통계 전문 간호사, 유전역학 연구를 위한 DNA 연구원, 상담 교육을 받은 간호사 등이 상호간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맞춤치료를 가능케 하고 있다. 무위심으로 의학 한계에 도전한다 '맞벌이 부부 의사의 통장에 잔액이 많은 것은 들어오는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나가는 돈이 적기 때문이다'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낮 동안에는 학생들과 1백여 명의 환자와 시간을 보내고 저녁에는 사례연구와 새로운 치료방법을 연구하는데 매진하는 배 교수에게 개인적인 지출은 밥값이 대부분이다. 밥 먹는 시간조차 쉽사리 낼 수가 없어 주문하면 가장 빨리 도착하는 음식인 자장면으로 끼니를 대신한 적도 많다는 그는 요즘 건강을 위해 일 주일에 한번 정도 선(禪) 체조를 하고 있다. "제가 체력이 약하기 때문에 더더욱 환자를 잘 이해할 수 있을는지도 모릅니다. 체력을 위해 상당히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진료를 위해서 음주도 자제하지요. 음주운전이 그렇듯 음주진료도 범죄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무리를 하면 그 피해는 그대로 한 번의 진료를 위해 2, 3개월을 기다린 환자들에게 돌아갑니다." 순식간에 생명을 잃을 수 있는 류마티스 환자를 앞에 두고 배 교수는 늘 무위심(無爲心)을 떠올린다. 태아까지 위험에 처한 임산부 루프스 환자를 살렸을 때가 가장 보람있었다는 그에게 있어 가장 초조한 시간 역시 처방을 하고 결과를 기다릴 때일 것이다. 어떤 것을 이루려는 마음보다는 의학의 한계에 도전하며 의사와 학자로서의 삶을 충실히 꾸리면서 매순간 최선을 하려는 배 교수를 통해 '의술은 인술'이란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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