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지난 9월 22일 발표한 '2013년 건강보험 진료비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65세 이상 치매환자 수는 60만 4000여 명이다.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한 명은 치매를 앓고 있는 것. 과거에는 치매를 '망령', '노망' 등 노화현상이라고 인식했던 반면 최근 들어 치매가 뇌질환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치료법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우리대학 김희진 교수(의대·의학)는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개발회사 가바플러스와 치매의 예방 및 치료를 위한 어플리케이션 '브레인닥터'의 개발자문으로 치매 예방을 위한 프로그램을 고안했다.
돌이킬 수 없는 병 아니야
치매는 노인성 질환의 대표적인 질환으로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뇌기능이 손상되면서 생기는 질환이다. 기억력, 언어 능력 등의 인지기능이 저하돼 일상생활에 장애가 발생한다. 김 교수는 "치매는 뇌세포가 사라지면서 해당 뇌의 부분이 담당하는 기능을 상실하는 병"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뇌세포는 죽더라도 세포간의 연결을 담당하는 시냅스는 끊임없이 자라기 때문에 시냅스를 강화하면 해당 기능을 꾸준히 사용할 수 있어요. 그래서 일기를 쓰고 그림카드도 맞추면서 뇌 기능을 증강하는 방법을 고안해야 하는 겁니다."
치매는 알츠하이머로 인한 치매, 혈관성 치매 등 다양한 원인이 있다. 얼핏 생각하면 원인에 맞는 질환별 치료가 효과적일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김 교수는 질환별 처방이란 의미가 없으며, 원인은 각각이더라도 환자가 보이는 증상별로 치료해야 한다고 말했다. "치매는 가역적 치매와 불가역적치매로 나뉩니다. 가역적치매는 갑상선질환, 비타민부족, 저나트륨혈증 등 원인이 있는데 이런 병들은 원인만 교정하면 즉시 치매를 고칠 수 있어요. 하지만 파킨슨 치매, 혈관성 치매 등은 뇌세포가 자연적으로 없어지는 퇴행속도를 가속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치료법은 똑같습니다."
김 교수는 노인들이 브레인닥터가 제공하는 문제를 풀면서 자신의 뇌 기능을 측정하고, 꾸준히 관리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브레인닥터는 나이, 학력 등 환자의 다양한 상태에 따라 맞춤형 문제를 내요. 예를 들면 75세에 학력이 3년인 여자라고 입력을 하면 그에 맞는 레벨테스트를 합니다. 그리고 테스트 결과에 맞게 뇌의 7가지 영역이 적절하게 섞인 프로그램이 제공되죠. 문제 풀이를 끝내면 날짜와 시간이 저장되고 일기를 쓰도록 해요. 그 데이터 베이스가 축적되면 주치의와 상담하기도 편하고, 원격진료에도 유용하게 쓰일 겁니다."
브레인닥터의 성공적인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여러 대학병원 교수들과 재활치료 전공자, 대한치매학회까지 많은 사람들이 팔을 걷어붙였다. 김 교수는 실제 환자들에게 브레인닥터를 사용하도록 하면서 임상데이터를 축적하고 프로그램에 대한 컨설팅을 맡았다.
김 교수는 비약물적 치료 개발에 직접 참여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비약물적 치료에 대한 의사들의 요구는 많았어요. 하지만 그것을 개발할 수 있는 기술이 없어서 실현이 안 되고 있었죠. 가바플러스 측에서 제가 몸담은 대한치매학회에 직접 연락이 왔어요. 좋은 취지이고 환자들의 치료에 현실적인 도움이 될 수 있겠다고 판단해서 학회의 이사장님께서 핵심 멤버 10명을 모아서 참여하게 됐습니다."
치매, 국가적 관리 필요해
브레인닥터는 궁극적으로 의사와 연계하여 치료를 돕기 위해 고안됐다. 치매는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병이라는 인식이 확립된 상태로 이미 국가적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중증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장기요양등급을 인정하여 매달 3만원의 지원금과 간병인 서비스를 지원한다. 하지만 중증 치매 환자는 회복이 어렵기 때문에 요양인 지원이 생활 보조에 한정되는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급증하는 치매환자를 막기 위해서는 치매가 오기 전에 예방을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됐고, 정부는 차후 경도 치매 환자까지 포괄하는 치매 5등급을 신설하여 치매 예방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브레인닥터는 이러한 정책 기조에 발맞춰 치매 예방의 첨병 역할을 할 것이다. 의사가 웹을 통해 환자를 인지 할 수 있고, 매일 혈압, 혈당 등의 환자 리포트를 실시간으로 전송 받고 그에 대해 피드백을 할 수 있다. 게다가 브레인닥터의 활용 기록이 데이터로 저장되기 때문에 특정 기능이 떨어지면 그에 대한 학습을 늘릴 것을 조언하거나, 이후 약물을 집중 처방할 수 있다. 이런 데이터베이스가 쌓이면 치매 환자 자체에 대한 빅데이터 분석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치매 연구에도 활발히 기여할 예정이다.
김 교수는 기술이 더 발전한다면 얼마든지 치매를 없애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바이오마커(단백질이나 DNA, RNA, 대사 물질 등을 이용해 몸 안의 변화를 알아낼 수 있는 지표)를 통해 치매가 걸릴 수 있는 사람을 가려낼 수 있다면 그 사람들에게 브레인닥터 같은 치매 예방 어플 설치를 권유하고, 관리하면 치매를 완전히 정복할 수 있는 날이 올겁니다. 아무도 치매에 걸리지 않는다면 치매는 지구상에서 사라진 것과 다름없죠."
브레인닥터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는 노인층을 대상으로 한 스마트 기기의 보급과 사용교육 문제다. 김 교수는 "스마트 기기에 친숙하지 않은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한 예방 어플과, 요양사를 대상으로 한 치료용 어플을 별도로 개발할 필요가 있어요. 스크린 터치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분들이 집중력을 갖고 어플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도 더 고안해야 합니다. 피처폰과 달리 스크린터치 형태의 스마트 기기는 누르는 느낌이 나지 않아서 집중을 못하시는 경우가 왕왕 있어서 쉽고 지루하지 않은 어플 개발이 당면한 목표라고 할 수 있죠."
김 교수는 브레인닥터에 대해 신의료기술 인정을 신청했다. 신의료기술로 선정되면 국민건강보험에 의해 환자들이 브레인닥터 설치 비용을 청구할 수 있기 때문에 환자 부담을 경감시킬 수 있고 차후 연구를 위한 재원 확보가 가능해진다. 지난 심사에서는 임상 자료가 많지 않아 탈락했지만 임상 데이터를 더 모으며 신의료기술이나 의료보조기구에 등재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노인환자만이 줄 수 있는 끈끈한 매력에 이끌려
김 교수는 레지던트 과정을 밟을 때까지만 해도 치매환자를 접한 적이 없다고 했다. 당시 치매는 노환의 일종으로 취급 받아서 병원의 치료보다는 가정에서 돌봐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 그 후 지도교수의 권유로 치매학회에 참석하면서 노인 환자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자연스럽게 치매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
"신경과로 진로를 정하니 노인환자들과 함께 생활하게 돼요. 제 전공에서 다루는 것이 뇌졸중이나 치매 같은 질병이니까요. 노인환자들에게는 젊은 환자들은 줄 수 없는 끈끈한 정이 있다고 생각해요. 지치긴 하지만 힘들진 않아요. 노인들은 집에서도 병원에서도 환영 받지 못하는데 그분들이 마지막 가시는 길에 친구가 돼 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김 교수는 타 대학 의대에 진학하기 전 우리대학 생물학과에서 학부를 마쳤다. "신경학과에 진학 이후 학부 때 배운 기초과학이 많은 도움이 됐어요. 그 시기가 제 인생의 자양분이 됐던 것 같습니다. 신경학과는 고령화 사회의 이슈들과 밀접하게 연결된 학문이고,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 합니다."
김 교수는 "원리원칙을 지키는 연구자가 되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고 밝혔다. "임상 데이터를 모으면서 데이터 조작에 대한 유혹도 많이 들었어요. 논문도 계속 써야 하는데 자신의 연구성과를 더 예쁘게 포장하고 싶은 욕구가 들기 마련이죠. 하지만 원칙을 고수하는 연구자가 돼 우리나라 연구 환경 개선에 이바지 하고 싶습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나라도 언젠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 할 수 있지 않을까요."
- 김선희 학생기자
- pdg10@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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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유미 사진기자
- lovelym2@hanyang.ac.kr
2014-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