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근로자들의 연 평균 근로시간은 2092시간. 1705시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평균보다 400시간 이상 길다. 그만큼 직업활동으로 인한 질병이나 사고에 노출될 위험성도 높다. 최근 삼성전자가 백혈병 피해 근로자들에게 보상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하면서 직업성∙환경성 질환 연구에 관심을 촉구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지난 4월 개설된 이화의료원 직업환경의학과에 과장으로 임명된 김현주 동문(의학.87)은 직무 스트레스 관련, 국내에서 손꼽히는 전문가로 꼽힌다.
조금은 생소한 ‘직업환경의학과’가 하는 일

일반적인 ‘의사’의 이미지, 진료실에 앉아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하지만 김현주 동문은 오히려 현장에 나설 일이 많다. “직업환경의학과에서는 근무환경이나 작업과 관련해 발생되는 건강문제를 예방하고 근로자와 지역사회 주민의 건강을 증진시키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공장이나 회사에 순회점검을 갈 일이 많아요.”
직업환경의학과는 이름처럼 ‘직업성 질환’과 ‘환경성 질환’을 다룬다. 제일 흔한 직업성 질환은 근골격계 질환과 뇌심혈관계 질환이다. 근골격계 질환은 목, 어깨, 허리, 팔∙다리의 신경이나 근육에 나타나는 질환으로, 반복적인 동작이나 부적절한 작업자세 등으로 발생한다. 뇌심혈관계 질환은 장시간 노동, 과도한 정신적 긴장, 감정노동 등의 직무스트레스에 노출될 경우 위험성이 증가한다. “작업장에서 다치는 경우 산업재해라는 것이 명확히 드러나지만, 뇌졸중, 심근경색 같은 경우 이 질병이 업무와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는 것을 밝혀내야 산재보험으로 치료받을 수 있어요. 산재보상에 대해 전문의사와 상담하고 ‘업무관련성 평가서’를 발급받을 수 있는 곳이 직업환경의학과입니다. 이 뿐만 아니라 건강진단 결과를 토대로 추적검사를 진행하는 사후관리도 하고 있습니다.”
환경성 질환은 환경오염으로 인한 건강장해 등 환경에 의해 발생하는 질병이다. 이는 병원에서 개인 수준으로 밝혀내기 쉽지 않아 대학이나 연구기관 차원에서 프로젝트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단국대 의대에서 평택미군기지 인근 주민의 ‘비행기 소음 관련 질병’을 진단한 사례가 있다.
직업병 판정을 위해 힘쓴 의사
보통 병원에서 환자를 직접 마주하는 의사인 임상의는 증상에 대해 진단을 내린다. 하지만 김 동문은 환자의 직업과 질병의 관련성을 파악하고 예방하는 일을 한다. “자동차 공장에 순회점검을 가서 손목이 아프다고 호소하는 노동자를 만났어요. 이전에 병원진료를 받은 적이 있지만 의사는 원인을 알 수 없고 치료도 안 되는 병이라고 했다는 겁니다. 알고 보니 이 환자는 하루에 약 2000번 손목에 힘을 줘 제품을 누르는 작업을 하는 노동자였습니다.” 김 동문은 작업량을 조정해 부담을 분산시킬 것을 조언했고 환자는 작업을 전환해 손목 부담이 덜한 일을 맡게 됐다.
업무상 질병으로 산재신청을 하면 근로복지공단에서는 업무상 질병 판정위원회를 열어 심의한다. 위원회에 참여하는 의사들은 자연과학적 인과관계로 진단하기 쉽다. 하지만 김 동문은 업무상 질병은 법적 근거에 따라 진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직업병 판정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한다는 취지를 가진 산재보상보험법에 근거해서 판단하는 것입니다. 사회적 판단과 자연과학적 판단을 혼동하지 않아야 해요.”

직업환경의학, 노동에 대한 관심의 연장
학부생 때부터 ‘공부만’ 하는 학생은 아니었다는 김 동문. 사회문제에 대해 관심도 많았다. “제가 학교를 다니던 시기는 1980년대 권위주의 정권시절로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때였어요. 이 문제에 대한 고민도 많았고 그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관련 책도 많이 읽었죠.” 이때부터 시작된 관심은 96년 산업의학과(현 직업환경의학과)에 지원하기에 이르렀다. 예방의학과(직업환경의학 전공)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후 단국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장, 서울근로자건강센터 부센터장에 이르기까지 김 동문의 관심은 늘 노동자의 건강에 있었다.
“산업의학과는 노동과 관련해 생기는 건강문제가 심각한데 ‘노동자를 위한 의사는 없나’ 하는 반성에서 만들어졌어요. 평소 노동문제에 대한 관심도 있었고, 진찰실에 갇힌 의사의 모습은 너무 답답해 보이더라고요.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장 노동국가다. 장시간 노동은 건강문제를 일으키는데 큰 원인이다. 근로자 개인이 건강문제를 예방하고 더 악화되지 않도록 돕는 일도 중요하지만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다. “개인 수준의 변화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많아요. 사업주에게 작업장 환경의 개선과 보건사업에 대해 조언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더불어 사는 행복

경제호황기에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걱정 없이 산 세대로서, 요즘 학생들은 ‘먹고 사는 문제’로 고민이 많다는 데 한편으로 미안함을 느낀다는 김 동문. “계약직 직원 면접을 무수히 많이 보는데, 학점이 4.0이 넘고 다양한 스펙을 가진 그들의 소원은 정규직이 되는 것이에요. 이런 시대에서 ‘왜 사는 건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 같은 청년기다운 고민을 하기가 어렵죠. 경쟁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기 때문이에요.”
직업특성상 회사 경영자부터 말단 직원까지 다양한 사람과 접하는 그.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낀 점이 있다. “다들 사는 게 비슷하고 고민하는 것도 똑같아요. 직장이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45살 때쯤 되면 또 제2의 직업을 찾기 위해 방황하고 고민하죠. 결국은 자신이 무엇을 통해 행복을 느끼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나 혼자 행복할 수는 없다는 것이에요. 주변 사람이 불행해서는 내가 행복하기 어렵습니다. 더불어 사는 삶이 나에게 얼마나 큰 행복을 줄 수 있는지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가졌으면 좋겠어요. 사회봉사도 해보고, 남들이 봤을 땐 ‘스펙’에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하고 싶은 일이라면 경험해 보고요.”
모든 근로자는 건강할 권리가 있다는 김 동문. 취약계층이든, 고령 근로자든 상관없이 편한 맘으로 직장과 관련된 건강상담을 받게 하는 것이 그녀의 목표다.
학력 및 약력

김현주(의학.87) 동문은 우리대학 의대를 졸업하고 단국대학교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과장을 역임했다. 2013년 서울근로자건강센터 부센터장으로 부임해 풍부한 임상 경험을 쌓고 직무 스트레스 관련 국내 최고 전문가로 꼽히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의료원에서 올해 새로 개설된 직업환경의학과 과장을 맡고 있다.

- 권수진 학생기자
- sooojinn@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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